★하응백씨 비판론 요지★
90년대 후반부터 문단 일각에서 환상문학에 대해 주목한 것은 70, 80년대 리얼리즘문학의 시대를 대체하는 새로운 방향의 문학론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유행하는 팬터지소설은 이런 환상문학론과 관련이 없다.
최근의 팬터지소설은 계보적으로 본다면 팬터지의 고전 ‘반지전쟁’을 쓴 J J R 톨킨 류의 팬터지소설→컴퓨터 롤플레잉게임→팬터지소설로 이어지는 것으로서 서양팬터지소설의 사생아이며 컴퓨터게임의 직접적인 자식이다.
또 ‘드래곤라자’에서 볼 수 있듯이 방대한 분량과 복잡한 구성을 정리해놓고 보면 무협지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문화산업으로는 응용되겠지만 팬터지소설의 문학적 미래는 없다.★작가 이영도씨, 평론가 하응백씨 비판에 反論★
‘드래곤라자’가 무협지와 다를 바 없다는 주장은 무협도 팬터지도 모르는 얘기다. 무협은 개인과 세계의 대립을 주된 소재로 취한다. 그래서 개인에게 세계에 대항하는 힘을 부여한다. 이 점에서 볼 때 무협은 코난과 슈퍼맨으로 이어지는 미국 중심의 영웅팬터지와 유사하다. 그러나 ‘드래곤라자’를 포함해 최근 한국에서 발표된 팬터지들은 영웅팬터지와 다른 모습을 띠고 있다.
한국팬터지가 컴퓨터 롤플레잉게임(RPG)의 자식이라는 주장도 수용할 수 없다. RPG의 대부분은 영웅팬터지 구조다. 하씨 주장대로 최근의 한국팬터지가 게임을 모방한 것이라면 한국에선 하이팬터지 대신 영웅팬터지가 주류를 이뤘어야 옳지 않은가.
결국 이러한 억측은 하씨의 팬터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부족에서 비롯됐다. 그는 팬터지의 원형이 30년대 발표된 영국작가 톨킨의 ‘반지전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하소설적 구조때문에 하이(high)팬터지로 불리는 톨킨 작품 이전에 이미 20년대 미국에는 작가 러브크래프트로 대표되는 공포팬터지, 검과 마법으로 혼란을 정복하는 영웅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웅팬터지(heroic fantasy) 등이 존재했다.
한국에서 하이팬터지가 선호된 것은 한국 특유의 정서때문이다. 역사가 일천한 미국에서는 자신들의 영웅과 신화를 만들려는 욕구 때문에 영웅팬터지가 우세했다.
그러나 오랜 역사와 풍부한 신화 전설을 가진 한국의 경우 팬터지작가들은 영웅 대신 그 내부에서 등장인물들이 선을 구현할 수 있는 ‘왕국’을 그리는데 주력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