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대담]「민족주의…」임지헌교수와 김동춘교수

  • 입력 1999년 4월 9일 19시 54분


《코소보 사태에서 보듯 ‘인종청소’라는 극단적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있는 20세기말. 지구촌에서 몇 안되는 단일민족 국가로 ‘민족주의’를 신주처럼 받들어 온 우리에게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는 책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저자인 한양대 서양사학과 임지현교수는 이 책에서 ‘민족주의는 더 이상 체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건설을 기약하는 반역의 이데올로기로 재창조돼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임교수와 김동춘교수(성공회대 사회학과)가 이 책에 대한 서평 대담을 통해 민족주의의 현재적 의미를 따져 봤다.》

△임지현〓그동안 한국 역사학계에서 민족주의는 당위론적인 ‘규범’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단일한 혈통과 조상, 언어의 통일성에 대한 ‘신화(神話)’는 사실상 우리에게 신성불가침의 터부였지요. 이 때문에 한국의 역사학계는 리얼리티보다는 ‘민족 신화 만들기’식 역사서술에 치중해왔습니다. 이는 북한과 남한이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식민지시대의 ‘저항적 민족주의’는 정당성을 갖고 있었지만 해방 후 남과 북 양쪽에서 민족주의는 정치권력을 정당화하는 ‘동원 이데올로기’로 사용됐습니다. 박정희의 민족주의와 북한의 주체사상은 체제유지를 위해 사용된 같은 정치동학(動學)으로 파악됩니다.

△김동춘〓민족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원인을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책임은 단지 역사학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정치구조와 관계가 있는 것이죠.

△임〓근대 민족주의가 태동한 서유럽의 경우 민족은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시민 공동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오토만 터키로부터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성립된 동유럽의 민족주의는 낭만적 감성에 호소하는 폐쇄적 민족주의였습니다. 이는 한국 민족주의 태동 과정과 매우 유사합니다.

△김〓글로벌화된 세계 경제질서에서 소외된 민족들의 분규가 터져나올 가능성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냉전체제에서는 사회주의운동이나 노동운동으로 표출됐지만 동유럽권 붕괴이후에는 민족분규로 터져나오는 양상입니다.

코소보 사태도 유고가 자본주의에 제대로 편입하지 못한 상황에서 냉전체제하에 봉합돼 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왔기 때문에 생긴 것이지요. 여기에 역사적 배경까지 덧붙여져‘인종청소’라는 극단적 형태의 민족주의가 등장했습니다.

△임〓한국의 배타적 민족주의도 21세기를 앞두고 청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선 부끄러울 정도로 무관심하면서도 재일교포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이율배반적 태도를 보입니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시민공동체적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를 대안으로 제안하고 싶습니다.‘인종적’ ‘종족적 개념’의 ‘민족주의’가 이제 공공적 시민적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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