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풍경]낙화 덧없음 간직했기에 슬픈 여인

  • 입력 1999년 4월 9일 20시 20분


화사한 색채가 물씬 뿜어져 나올 듯, 곱고 감미로운 그림이다. 빛나는 흰빛 속으로 물결처럼 흐르는 보라색이 흰빛에 탄력과 입체감을 선사한다. 봄을 즐기고 있던 나비는, 돌연 강한 꽃향기에 매료돼 꽃을 향해 급강하한다. 불꽃같다. 향기마저 나비를 농염하게 유혹하는 그런 4월이다.

천경자의 ‘4월’은 바야흐로 4월을 맞이하는 여심(女心)을, 꽃의 향기만큼이나 아름다운 슬픔으로 표현했다.

아름다운 슬픔인 것은, 꽃은 화려하지만 그 화려함 속에 낙화의 덧없음을 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허망함이 꽃의 개화(開花)에 내포된 것이다.

그림 속의 꽃, 나비, 여인 등이 몽환적인 까닭도 영원한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도달할 수 없는 꿈을 환상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꽃다발을 관(冠)처럼 치장한 여인이지만 요기를 띤 그녀의 눈망울이 오히려 아픈 슬픔을 가득 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실존 역시 이렇듯 꽃처럼 아름답고 슬프다. 천경자의 그림이 사색의 공간으로 우리를 이끄는 까닭이다. ‘질주하는 속도들을 가로질러 노랑나비 한 마리…/꿈같은 봄햇살 바깥으로 나온…’(‘차 속에서의 사색’)이라며 삶의 완급을 발견하는 황지우의 사색이 그림에 엿보인다.

조용훈(청주교대 국어교육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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