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으로 처참하게 살상당하는 양민은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의해 아비규환으로 생생하게 재현된 바 있다.
피카소는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를 돕기 위해 게르니카를 공습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한 히틀러의 만행을 고발한다.
죽은 아이를 품에 안고 울부짖는 어머니(왼쪽), 긴 칼에 앞가슴이 짓이겨진 말(중앙), 포탄으로 박살난 무릎을 안고 절규하는 부상자, 부러진 칼(하단부) 등이 전쟁의 참상을 입체화한다. 화면 중앙부는 삼각형 구도를 형성하여 학살의 공포를 수렴해 불길처럼 증폭시킨다.
또한 화면을 비수처럼 찢는 검고 흰 명암의 극명한 대비는 오열과 절규마저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공포의 가위눌림으로 클로즈업한다.
그러나 피카소는 전쟁의 광기와 폭력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희망으로 전환시킨다.
하단부의 부러진 칼, 그 위에 핀 여린 꽃 한 송이, 죽음의 어둠을 물리치는 상단부의 횃불, 그리고 등(燈).
특히 등이 전쟁을 고발하고 증언하는 눈(眼)의 이미지임을 확인한다면이 그림은 잔인한 폭력이 아니라 정신적 아노미 상태를 경계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부러진 칼 위에 핀 꽃처럼. 죽음 속에 핀 꽃처럼.
‘수렁 깊은 곳/하늘도 비추잖는 진흙창 늪/온갖 회한 그대로 안고/끝내 날아’올라, ‘있는 그대로/황금빛 눈부심 되어/불타’(김지하·‘바램 3’)오를 불꽃처럼 말이다.
조용훈(청주교육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