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무라카미 류 「달콤한 악마가…」

  • 입력 1999년 4월 16일 18시 38분


요리와 관능. 인간 마음의 깊숙한 곳에는 식욕과 성욕이란 두 가지 기본적인 욕망이 꿈틀거리면서 서로를 부추긴다. 촉감(觸感)은 미감(味感)을 자극하고 미감은 다시 성감(性感)을 일깨우며 욕망의 끝으로 치닫는다.

일본의 저명작가 무라카미 류(村上龍·47)의 요리소설집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작가정신)는 캐비어 삼계탕 무스쇼콜라 자라요리 등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와 그 맛을 통해 사랑과 성(性), 만남과 이별 등 인생의 다양한 단면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눈으로 보는 소설이 아니라, 혀로 맛보고 오감으로 느끼는 소설인 셈.

소설 속의 주인공은 젊은 영화감독. 그는 유럽 출장 중 니스 공항에서 아는 여자 CF모델을 우연히 만나 모나코의 한 우아한 귀족풍의 호텔에 함께 든다. 그들은 저녁식사를 하면서 무스쇼콜라를 먹는다. 무스쇼콜라는 달걀 노른자와 시럽을 끓인 데다 초콜릿 등을 넣어 만든 디저트의 일종.

여자는 “정반대의 맛이 하나로 녹아서 전혀 다른 것이 돼버린다니, 정말 믿을 수 없어. …뭔가가 내 안으로 들어온것 같아. 자기가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애”라고 속삭인다. 남자도 묘하게 들뜬 기분이 된다. 꿈같은 날들도 잠깐. ‘달콤한 악마가 이곳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너무 늦었다. 그들은 각자의 생활을 보호해주기 위해 도쿄에서는 일절 만나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헤어지기 전 무스쇼콜라를 먹으면서도 ‘지독히 맛없는 초콜릿이야’라고 생각해야 한다.

주인공은 또 열 한 번 성형수술한 여자와 함께 쇠갈비를 살짝 구운 ‘로스트 프라임 리브스’ 요리를 먹으면서 성욕이 솟구침을 느낀다. ‘입 안쪽의 점막을 아기의 혀가 애무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여자의 엉덩이는 아까 먹은 프라임리브스 같이 부드러웠다.’

작가는 한국에서 태어난 어머니 덕택에 곱창전골이나 게장 등 한국음식도 좋아한다. 그래선지 삼계탕을 ‘생명을 입 속에 넣는 듯한 느낌을준다’고 묘사하고 있다.

무라카미 류는 이 책에 32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최근 소개된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나는 ‘거품시대’에 인생에서 최고의 낭비를 즐겼으며 이 책은 이 때(88년) 씌어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는 세계 미식가협회 임원일 정도로 뛰어난 미감과 요리지식을 바탕으로 몇 편의 요리소설을 써서 일본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첫날밤, 두번째밤, 마지막밤’이란 그의 다른 요리소설도 지난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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