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타임 근로자 실태―문제점]일은 정사원만큼…

  • 입력 1999년 4월 20일 19시 48분


《IMF관리체제 이후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면서 ‘파트타이머(단시간근로자)’가 우리 사회의 새로운 고용 형태로 떠올랐다. 파트타이머 고용은 필요에 따라 인력을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는데다 인력관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유통 및 제조업체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 중이다. 그러나 사회적 관심 부족과 단순한 임금삭감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기업풍토로 인해 열악한 근로조건과 불안한 고용 속에서 사회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파트타이머도 적지 않은 형편이다.파트타이머의 실태와 문제점 등을 짚어본다.》

20일 기업은행 S지점.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명예퇴직한 정모씨(35·여·강서구 둔촌동)는 여전히 창구에서 손님들을 맞고 있다. 달라진 점이라면 신분이 파트타이머로 바뀌었다는 것뿐.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8시간 일하고 시간당 2천8백원을 받는다. 84년 기업은행에 입사, 퇴직전 연봉 3천만원 정도를 받던 정씨는 신분이 바뀐 뒤 1년에 1천만원 벌기도 힘들다. 의료보험 국민연금 등은 퇴직전이나 똑같지만 연간 6백%의 보너스와 자녀학자금보조비, 체력단련비(연간 4백%) 등 정규사원에게만 주는 혜택은 받지 못한다.

그는 이 지점의 15명 직원 중 유일한 파트타이머. 신분이 바뀌었다고 일을 게을리하지는 않지만 일에 대한 책임감은 정규사원 때처럼 크지 않다. 다른 직원들이 여전히 잔무를 처리하고 있는 오후 5시. 정씨는 ‘냉정하게’ 가방을 챙겨들고 자리를 뜬다.

지난해 기업은행에서 명예퇴직한 9천6백여명중 2백20∼2백30명이 정씨처럼 파트타이머로 전환돼 일하고 있다.

파트타이머 고용은 은행의 ‘텔러’뿐 아니라 유통업체의 ‘캐셔’‘주차관리원’‘보안요원’, 제조업체의 생산직 등 단순 업무직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추세다. 서울 강남구 갤러리아백화점에서 주차관리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강회주(姜會珠·22)씨. 작년 5월 정사원으로 입사했지만 IMF사태가 터진 직후인 12월 파트타이머로 신분이 바뀌었다. 백화점측이 주차관리 부문을 용역회사에 넘겼기 때문. 정오에 출근해 오후 7시까지 백화점 주차장에서 손님 안내를 하고 일당 3만원을 받는다.

“신분이 달라졌다고 크게 바뀐 것은 없지만 회사측이 사소한 부분에서 차별을 할 때 서운해요. 예를 들어 얼마전 정사원들에게는 회사 배지를 나눠줬는데 우리는 받지 못했지요”. 그는 파트타이머로 신분이 바뀐 뒤 직원들의 애사심이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LG생활건강 소속으로 서울 도봉구 창동 하나로마트에서 LG제품을 판매하는 임모씨(23·여)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10∼12시간. 파트타이머는 법적으로는 주당 근로시간이 44시간을 넘지 못하지만 대부분 파트타이머들은 정규사원과 똑같이 일하면서 파트타이머 대우를 받고 있다. 그는 “업체에 파견된 파트타이머로서 이곳 직원들과 사소한 마찰을 일으킨 동료가 곧바로 교체되는 것을 보면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갤러리아백화점의 경우 97년 4백52명의 직원중 1백14명(25%)이던 파트타이머 비율은 올해 3백78명중 1백66명(44%)으로 늘었다. 한화스토아는 현재 정직원(5백51명)보다 파트타이머(6백2명)가 더 많다.

실업율이 높아지고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파트타이머에는 학력의 장벽도 무너졌다. 갤러리아백화점의 경우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파트타임머인 ‘캐셔’와 ‘주차관리요원’으로 6개월 이상 일하고 있는 사람도 5∼6명에 이른다.

통계청 월별고용동향에 따르면 IMF이전인 97년 2월 1천2백91만7천여명의 임금근로자중 43.4%(5백6백1만6천여명)였던 임시, 일용직 근로자 비율은 올해 2월에는 48.7%로 증가했다.

〈이훈기자〉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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