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유미리 지음 「골드러시」

  • 입력 1999년 4월 23일 19시 38분


★「골드러시」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솔출판사 352쪽 7,500원★

‘마음만 먹으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은밀히 살인을 즐길 수 있다. 내가 일부러 세상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투명한 존재인 나를 적어도 당신들 공상 속에서나마 실존하는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싶어서이다.’

범행을 저지른 소년이 대담하게도 신문사에 보낸 성명서를 읽어 내려가던 재일교포 작가 유미리(柳美里·31)는 가슴 깊은 곳에서 지진이 일어난 듯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소년은 97년 5월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고베의 엽기적인 살인사건의 범인. 14세인 그는 초등학교 여학생을 죽인데 이어 다른 초등학교 남학생을 산으로 유인해 살해한 후 목을 잘라 교문 앞에 갖다놓는 흉악범.

유미리는 성명서를 읽어가면서 자신의 ‘어둠’을 들켜버린 느낌이었다. 자살미수 정신병원통원 약물복용 등…. 자신의 14세 역시 이 소년처럼 ‘투명하고 텅비어 있는’ 시기였다. 아직도 자신에게 달라붙어 있는 ‘14세의 불안과 공포’를 떼어내기 위해서라도 작가는 14세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과거와의 싸움이기도 했던 어려운 집필과정 끝에 98년말 내놓은 ‘골드 러시’는 출간 즉시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일본사회의 악마성에 대한 보고서’ ‘비인간적 인간성의 형해(形骸)를 그린 사실화’ 등의 평가를 받으며 98년 아사히신문이 뽑은 ‘올해의 책 5권’에 들어가기도 했다.

작품속의 아버지는 빠찡꼬 가게를 운영하면서 탈세를 통해 돈을 벌고 모든 것을 금전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인물.

어머니는 첫아들이 불치병에 걸리자 종교에 빠져 가정과 자식을 버린다. 형은 정신과 육체의 성장이 멈춘 불치병에 걸려 있고 누나는 생의 방향을 잃고 원조교제에 탐닉해 있다.

소년의 눈에 세계는 힘으로 자리매김돼 있고 그 힘의 원천은 돈으로 비쳐진다. 소년은 어른과 아이의 차이는 오로지 힘과 돈의 유무에 있다고 인식, 아버지의 힘과 돈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빨리 어른이 되려고 아버지를 살해한다.

작가는 소년의 의식을 끔직하도록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그윽한 이해의 눈길로 그 의식의 밑뿌리에는 인간에 대한 강한 그리움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작가 특유의 문학성이 배어나는 부분이다.

‘물고기 축제’ ‘풀하우스’ 등 유미리의 기존 작품들이 암울하게 끝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주인공이 구원의 희망을 느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소년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빛바랜 가족사진을 꺼내 보면서 따뜻한 가족애를 느끼는 것이다.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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