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자 처음 보인 것은 회색빛 장전항이었다. 금강산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 관광선 봉래호가 정박한 북한의 군항(軍港).
17일 오전8시반 경. 긴장감과 호기심에 둘러싸인 관광객들이 배 갑판 위로 몰려 나왔다. 일반 관광객들 틈에 끼여 있는 작가들은 하나 둘씩 스케치북을 꺼내기 시작했다. 잔설(殘雪)을 이고 펼쳐진 금강산 관음연봉 등이 순식간에 화면 위로 옮겨졌다.
항구에 내린 뒤부터 작가들은 더욱 바빴다. 차를 타고 가거나 걷거나 계속해서 스케치를 했다. 숙달된 손놀림으로 재빠르게 산세와 계곡을 그려나갔다. 관광코스 정상까지 올라가면서 스케치할 곳을 점찍어 둔 뒤 내려오면서 차례로 스케치하는 작가, 마음에 든 곳에 처음부터 머물며 그리는 작가 등 스케치 방법도 갖가지였다. 특히 작가들은 만물상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삼선암 앞에서 오래 머물렀다. 이곳은 근대 한국화가 소정 변관식이 그 빼어난 경치를 화폭에 자주 옮겼던 장소.
“소정이 왜 삼선암을 그렸는지 알 것 같군요. 그의 그림이 옛 선조들의 그림보다는 좀 더 현대적인 느낌이 듭니다.”
“소정이 너무 삼선암을 크게 과장해서 그린 것은 아닌가요?”
이튿날에는 화가들이 구룡폭포 앞에서는 집중적으로 스케치를 했다. 한국화가 이종상은 먹의 색깔이 단조롭다고 흙을 개어 색칠을 하고 길에서 주운 숯으로 소묘를 하기도 했다.
“금강산 계곡의 물빛만 그리고 싶었습니다.”(윤석남·조각)
“금강산의 기(氣)가 나와 맞는 것 같습니다. 무언가 될 것 같습니다”(문봉선·한국화)
“금강산의 장관과 생동감에 초점을 맞추겠습니다.”(신장식·서양화)
작가들은 돌아오는 배 위에서 자신들의 스케치를 돌려보면서 각자 새롭고 훌륭한 작품을 만들 것을 다짐했다.
이들의 작품은 오는 7월 서울 동아일보 광화문사옥 일민미술관에서 선조들이 그린 금강산 옛 그림들과 함께 ‘다시 찾은 금강산전’의 이름으로 전시된다. 이 행사는 동아일보와 일민미술관이 주최하고 현대그룹이 협찬한다.
〈금강산〓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