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돈연스님-도완녀부부 삶터 정선 메주마을

  • 입력 1999년 4월 28일 19시 36분


인연이란 묘한 것. 승보사찰 송광사 출신의 전도양양한 학승(學僧) 돈연(53)과 서울음대를 졸업하고 독일유학에서 돌아와 ‘잘 나가던’ 첼리스트 도완녀씨(45)가 16년만에 다시 만난 것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동료 스님의 ‘안타까운 축사’를 들으며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린 것도, 허다한 처소를 마다하고 깊은 산골 가목리(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에 정착한 것도, 첼로를 켜던 섬세한 손으로 메주를 띄우며 촌부로 살아가는 것, 모두가 그렇다.

그러나 인연은 곧 조화. 첼로와 된장은 둘이 아니었다. 햇빛과 물, 기온이 제대로 갖춰져야 맛을 내는 된장, 인생의 깊은 경륜 없이는 제 소리를 내기가 어렵다는 첼로. 이 둘은 ‘익어야 제 맛을 낸다’는 공통점으로 가목리에서 하나가 됐다.

24일 두 사람이 여래(5) 문수(4) 보현(3) 3남매와 함께 사는 가목리를 찾았다. 이곳은 산으로 둘러싸인 정선에서도 오지. 그러나 최근 들어 ‘메주마을’로 불리며 사람들의 길이 부쩍 잦아졌다.

백봉령 아래 비포장도로를 따라 5백m쯤 들어가면 흰색의 ‘정선된장’ 2층공장이 나온다. 옆에는 작은 개울과 울창한 송림, 마당에는 1천5백개나 되는 ‘항아리 사단’이 도열해 있다. 전국에서 구해 온 수십년 이상된 것. 된장 간장은 이 안에서 익고 있었다.

사람들이 메주마을을 찾는 것은 된장 간장 때문만이 아니다. 삶의 향기를 맡고픈 이유도 있다. “돈 벌기 위해서였더라면 벌써 포기하고 떠났을 거에요.” 도씨는 “스님의 아름다운 뜻에 끌려 이 일을 즐겁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중국어로 번역된 불경을 재번역한 한글경전 대신 범어로 쓰인 경전을 직접 번역한 한글경전을 편찬하겠다는 것.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목격한 뒤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불교종단의 무력함에 참담함을 느끼고 절을 등진 돈연스님은 부처에게 묻기 위해 부처가 생전에 지났던 길을 찾아 나섰다. 그것은 세 차례 인도에 건너가 2천㎞를 걸어 순례하는 고행길이었다. 그런뒤 89년 가목리에 정착, 내 손으로 벌어 내 힘으로 역경사업을 펼치겠다고 서원하고 메주를 쑤기 시작했다. 93년 대처승이 된 후에도 그는 비구승일 때와 다름 없이 노동을 통해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콩작황이 나빠 올 봄 모처럼 한가해졌다는 부부는 요즘 그동안 미뤄온 일을 하느라 부산하다. 이곳에 작은 절과 누구나 찾아와 쉬며 생각할 수 있는 명상센터, 청소년수련원, 역경연구원을 짓기 위한 준비작업이 그것. “된장 간장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첼로연주회도 열어 이 일에 동참할 분들을 찾으려 합니다.”

‘된장스님과 메주첼리스트’부부의 고운 뜻은 각자 써서 곧 출간할 ‘남편인줄 알았더니 남편이 아니었더라’ ‘시인과 농부 그리고 스님’ 두 수필집(해냄)에 쓰여 있다.

〈정선〓조성하기자〉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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