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사는 1932년 4월29일 일본군의 상하이(上海) 점령 자축연이 열린 상하이 훙커우(虹口)공원(현 루쉰공원)에서 단상을 향해 폭탄을 던져 일본 시라카와 요시노리(白川義則)상하이 점령군 총사령관을 폭사시키고 우에다 겐키치(植田謙吉)제9사단장과 노무라 기치사부로(野村吉三郎) 해군사령관 등 다수에게 중상을 입혔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틀후인 5월1일 호외판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윤의사가 끌려가는 사진을 함께 게재했다.
그러나 윤의사를 연구해온 상하이 주재 한국 총영사관 강효백(姜孝伯)영사는 28일 “문제의 사진 속의 인물은 이마 눈썹 코 등 얼굴형과 체구에서 거사 사흘전 한인애국단 선서식 때의 윤의사와 확연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강영사에 따르면 △거사당시 윤의사는 25세였으나 사진 속의 인물은 35∼50세로 보이며 △거사직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군의 폭행으로 정신을 잃고 진흙탕에 쓰러졌던 사람치고는 옷차림이 너무 말쑥한 데다 모자까지 들고 끌려가는 등 윤의사로 보기에는 의문점이 너무 많다는 것.
이 때문에 강영사는 사진 속의 인물이 거사직후 현장에서 일본군이 체포한 조선인 8명 등 여러 사람 중의 한 사람이지 윤의사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준엽(金俊燁·전고려대총장)사회과학원 이사장은 “의문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전문가의 고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매헌 윤봉길평전’을 쓴 김학준(金學俊)인천대총장은 “체포직후 윤의사가 너무 당당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일본측이 다른 사진을 골라 썼을 가능성이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