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그래 너희 뜻대로 해라」

  • 입력 1999년 4월 30일 19시 45분


★「그래 너희 뜻대로 해라」신광철외 지음 황금가지 255쪽 7,000원★

“10대에 들어선 자식이 있으면 집에 자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정신병자가 있거니 하고 생각하는 것이 좋아요.”

전교 수석을 다투던 고3 아들이 “만화가가 될 테니 대학엔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던 날. 결국 그 아들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서 자퇴원서를 함께 냈던 정두희교수(서강대·한국사). 그는 오래전 선배 신광철교수(전북대·윤리학)로부터 들었던 이 말을 되새겼다. 그래, 정상인 내가 이해해야지….

“아이들 교육을 어떻게 시켜야 할지 한말씀 좀…”이라는 청을 듣는 대학교수. 그러나 ‘자식농사 내 뜻대로 안되기’는 마찬가지.

그 대학교수 22명이 자녀교육에 얽힌 사연을 모아 책을 냈다. 필자 중 교육학 전공자는 3명뿐. 글 역시 새 교육모델이거나 자녀교육 성공담이 아니다. 부모로서 자식들에게 쓴 솔직한 편지글이다.

“훈계조의 글이 아니라 평소 아이를 키우며 느끼던 고민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얘기했습니다.”

편집위원인 전북대 김의수교수(철학)의 설명. 자녀교육 문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본 동료들에게 글을 청했다. 자식교육에 실패했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는 이에게는 그 실패담을 쓰라고 설득했다.

우등생 모범생으로만 살아온 부모로서 공부 못하는 자식들을 야단치다 오히려 허를 찔리기도 한다.

“‘저는 공부는 못하지만 부모를 속이거나 나쁜 짓은 하지 않잖아요?’라고 네가 당당히 항변했을 때 솔직히 처음에는 매우 당황했다.”(전북대 조순구교수·정치학)

글을 쓴 교수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아이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전에 자식의 입장에 서보려고 노력한다는 것. “고전음악을 들어라”고 하기 전에 아이가 열광하는 H.O.T의 3집앨범을 먼저 사서 들어보고, 열광하는 스포츠잡지 ‘루키’ ‘원온원’을 따라 읽는다.

그러나 교육자로서 자식들에게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을 가르치는데 단호한 이도 있다.

10대 아들이 치마같이 통 넓은 바지를 몰래 사들고 오자 가위로 바지를 잘라버린 수원대 김영호교수(생물학)는 “입고 싶으면 먼저 당당하게 네 생각을 표현하라”며 ‘폭거’의 이유를 설명한다. 전북대 배영동교수(정치학과)는 의대 법대생인 두 딸에게 “공부해라, 죽어라고 공부만 해라. 재학 중에는 연애도 하지마라. 너희들이 택하기로 한 직업 속성 상 불가피한 일이다”라며 철저한 직업윤리를 권한다.

기획의도와 달리 평문에 가까운 글 몇 편이 함께 묶인 게 흠이다. 그러나 ‘교수’라는 권위 뒤에 숨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사연들의 진실성이 강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글쓴이들은 자식들에게 먼저 이 편지를 공개했단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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