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다 탤런트 이영애의 이미지다. 마치 딴 사람처럼 서로 닮지 않았다. 마치 극과 극이 겹친 듯하다.
그는 91년부터 9년째 같은 화장품의 CF에 전속모델로 출연하고 있다.
‘산소같은 여자’라는 광고 문구 아래. 여성 연기자의 인기와 나이, 이미지에 가장 민감하다는 화장품 CF업계에서도 드문 일로 꼽힌다.
반면 97년 방영된 MBC ‘내가 사는 이유’의 술집 작부 애숙은 그에게 새로운 연기체험의 기회를 주었다.
촌스러운 화장에 “야 임마”같은 거친 말을 내뱉지만 사랑이, 사는 게 뭔지 알았던 70년대 ‘순정파’ 작부였다.
“CF는 나를 키웠지만 또 힘들게도 했습니다. CF의 고정적 이미지를 벗어나 연기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무던히도 몸부림쳤죠. 그러다가 만난 ‘사람’이 애숙이죠. 카메라 앞에 서는 게 두렵다가 어느 순간 연기의 즐거움을 느끼게 됐으니까요.”
공교롭다. 요즘 SBS 주말극 ‘파도’(밤8·50)에 여주인공 윤숙으로 출연중인 그의 ‘드라마속 운명’이 연기인생과 비슷하다.
낮에는 화장기 하나없는 맨 얼굴의 여대생이다.
그러나 밤에는 학비와 할머니의 치료비를 위해 립스틱 짙게 바르고 술을 따르는 룸살롱 호스티스로 살아간다.
“윤숙이라는 인물에 대해 듣는 순간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초조할 정도였습니다.
드라마는 많지만 성격의 변화가 뚜렷해 내 연기력을 키울 수 있는 배역은 흔치 않아요. 낮과 밤을 오가면서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하나의 인물로 완성해야죠.”
애착이 많아서일까. 스튜디오에서는 종종 분장과 의상을 둘러싸고 ‘신경전’이 벌어진다. 연출자(김한영PD)는 윤숙이 어쩔 수 없이 밤거리로 나온 인물이므로 70년대풍의 ‘촌티’패션을 해야 한다지만 이영애의 생각은 다르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귀동냥을 했더니 요즘 룸살롱 아가씨들은 화장을 촌스럽게 안한대요. 단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은데….”
이영애는 “내가 꼭 듣고 싶은 것은 ‘CF모델 출신 누구’가 아니라 그냥 연기자라는 말”이라며 ‘파도’에서 그 소원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