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밤이다
언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삭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서지도 못한
무척 적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리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백석시전집’(창작과 비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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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히 손으로 쓸어서 문밖으로 버린 거미새끼 한 마리 때문에 거미의 일가족을 다 만나게 되는 이 방안 풍경.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곳으로 가라고 큰 거미를 문 밖으로 또 보냈는데 그 자리로 또 찾아오는 이제 갓 태어나 일어서지도 못하는 더 작은 거미새끼. 시인이 고귀한 것은 그 작은 것을 종이에 받아 다시 문 밖으로 내보내며 엄마나 누나나 형이 그 작은 것의 가까이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하고 가슴을 아려할 줄 알기 때문이 아닐는지. 무심한 나의 행동을 수라(修羅)라 명할 줄 알기 때문 아닐는지.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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