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김혜순「미라」

  • 입력 1999년 5월 12일 19시 34분


나는 죽어서도 늙는다

나는 죽어서도 얼굴이 탄다

만약 한 사람의 일생을 지구 한바퀴 도는 것에

비유 할 수 있다면

나는 지금 사하라에 있다

폐경의 바다가 다 마르고

조개들이 타오른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손목을 잡던 수천의 손가락들이

발바닥 밑에서 뜨겁게 부서져 밟힌다

감싸안은 누더기들이 부서져 날린다

감은 눈 온다

―시집‘나의 불쌍한 사랑기계’(문학과 지성사)에서

千歲不變…천년동안 변치말자. 타클라마칸이라든가 고비라든가 어쩌면 둔황이었을까. 모래사막에서 발견된 천조각에 이렇게 써 있었다 한다. 千歲不變. 누군가의 맹세였으리라. 천년동안 변치말자는. 죽어서도 늙는, 죽어서도 얼굴이 타는, 영원성.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바닥 밑으로 떨어지는 수천의 손가락들. 천년동안 변치말자. 죽어서도 늙자.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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