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진 고전을 세기말의 모더니티로 윤색시킨 작업이 눈에 띄는 이색 작품. “혁명과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점철된 우리의 근대사 속에서 행동하지 못했던 지식인을 그리려 했다”고 연출가 김아라는 말한다.
작품 속의 햄릿(유인촌 분)은 아버지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은 숙부에 대한 복수에 갈등하지 않는다. “내가 무엇을 한들 이 세상이 바뀌겠는가…”하고 자위하는 햄릿의 독백은 자식인의 유약한 자기방어기법이다.
대신 햄릿은 ‘죽음의 유희’ 속에 몸을 던지는 염세적 냉소주의를 보여준다. “해가 돌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말라…하지만 내 사랑만은 의심말라…”하고 오필리어(방은진·진희경 더블캐스팅)에 대한 연서(戀書)만을 되뇌이는 유인촌의 눈빛은 퇴폐적이기까지 하다.
“이 모든 것을 역사에 기록하겠다”는 호레이쇼의 마지막 대사는 시대를 반추하는 자성마저 담겨 있다.
정치드라마로서의 색채는 무대에서 뚜렷이 발견된다. 검푸른색을 바탕으로 줄곧 어둑어둑하게 유지한 조명은 긴박한 갈등을 드러내기에 안성마춤이다. 하지만 무채색의 외투에 번쩍이는 은회색 패딩점퍼 군복은 정권과 권위의 상징이라기 보다는 패션에 민감한 서울 강남 관객을 겨냥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작위적이다.‘쉬리’의 히어로 최민식(레어티즈)은 여전한 자신감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 유시어터에서 6월20일까지. 평일 오후8시, 토 4시 7시반, 일, 공휴일 6시. 02―3444―0651∼4〈이승헌기자〉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