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승려와 철학자」/히말라야 山中問答

  • 입력 1999년 5월 21일 19시 28분


■「승려와 철학자」장 F 르벨·미티유 리카르공저 이용철옮김 창작시대 12,000원 ■

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계속 번져나가는 불교 신드롬은 대승(大乘)불교이자 밀교(密敎)인 티베트불교에서 출발한다. 티베트불교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는 89년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미국 유럽 지식인들의 정신적 스승으로 받아들여진다.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해 1백만명이 넘는 불교 신자가 있는 미국. 지식인들 중심으로 뿌리내리는 유럽의 불교 열기. 우리나라에 수행온 서양인들도 하버드대 출신의 미국인 승려 현각(玄覺)을 비롯해 60여명에 이른다.

왜 불교일까?. 왜 서양에서 대단한 호기심을 유발하는가?. 수많은 추종자가 따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20세기를 대표하는 서양철학자인 아버지와 전도 유망한 분자 생물학자였다가 티베트 불교의 승려가 된 아들. 이들이 나눈 대화를 수록한 대담집. 인간의 갈 길을 제시하는 철학의 역할이 박탈당한 이 시대에 서양인이 불교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가장 적절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마티유. 그는 26세 되던 해 모든 것을 버리고 티베트 불교에 귀의해 구도의 삶을 살아간다.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언론인인 아버지는 20년만에 네팔의 히말라야 산중에서 아들을 만난다. 그리고 둘은 인류의 정신적 삶에 대해 열흘간 지적인 대화를 나눈다.

“17세기 중반 이후 서양철학은 인생과 자연에 대한 인식을 종교와 과학의 영역으로 넘겨버렸습니다. 철학은 이제 이론적 훈련의 도구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과학의 성공만으로는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없습니다.”

정신적 가치가 결여된 물질적 진보는 결국 재앙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서양 과학문명의 비판에서 대화는 시작된다. 이들의 대화가 더욱 가치있는 점은 둘다 최고 수준의 서양 과학문명을 공부한 학자라는 점. 이들의 대화는 불교뿐만 아니라 철학 정치학 윤리학 심리학 등 인류 정신사에 대한 광범위한 지적 탐구로 이어진다.

모든 형이상학에 대한 불가지론(不可知論)을 펼치는 아버지는 불교의 정신세계에 대해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입장을 취한다. “불교란 종교인가 철학인가?” “불교적 지혜를 증명할 수 있는가?”

아들은 ‘깨달음’ ‘자아에 대한 무지와 집착’ ‘윤회’ ‘열반’ 등 불교의 주요 주제에 대해 설명한 뒤 정신과학으로서, 현실적 정치적 대안으로서의 불교의 역할에 대해 설득력있는 설명을 시도한다. 치열하지만 우애에 찬 이들의 대화는 철학책이자 불교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약간 난해하다 싶을 정도로 지적인 배경이 필요하지만 프랑스에서 6개월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으며 전세계 16개국에서 번역 출간됐을 정도로 대중성을 갖췄다. 대화체의 묘미를 살린 번역도 읽기 편하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