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불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임금노동자라는 데서 비롯된다. 생산수단에서 분리된 까닭에 생기는 불안정 때문이다. 가진 것은 노동력 밖에 없다.
농민에게는 땅이 있지만 임금노동자는 ‘뿌리 뽑힌’ 존재이다. 시장화와 개발이 진행되면서 임금노동자 즉 ‘뿌리 뽑힌 사람’이 늘어나면서 사회의 불안정성도 증가한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전쟁과 정복에 의해, 그후에는 새롭게 돈과 교육에 의해 여러 민족과 숱한 사람들이 ‘뿌리 뽑혀져’ 불행을 겪어야 했다. ‘뿌리 내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코소보의 비극을 보아도 금세 알 수 있다.
55년 전, 34세의 젊은 나이에 숨진 유태계 프랑스인 시몬느 베이유의 유작집 ‘뿌리를 내린다는 것’.
이 책은 고대 로마제국에서 비롯돼 르네상스와 근대로 넘어오면서 본격화된 ‘뿌리 뽑기’를 전면적으로 해명하고 거기에 맞서, 어떻게 이를 막고 극복하느냐를 제시한 21세기의 바이블이다.
이 책은 ‘살 권리’보다 ‘살아야 할 의무’가 더 숭고한 관념이라는 것, 논밭을 지날 때는 논밭에 경의를 표할 것 등을 역설하고 있다. 또 여러 민족과 종교가 지금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장소에서 공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공업화보다도 농업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만인에게 납득시켜 준다.
오랫동안 품절됐던 베이유 전집 일본어판이 출판사 창간 80주년을 기념해 최근 복간됐다. 일본제국주의세력에 의해 35년간 ‘뿌리 뽑혔던’ 한국에서도 이 책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번역서, 그것도 복간서인 이 전집을 굳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가와 하루히사(小川晴久/도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