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말한다]백영서/「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

  • 입력 1999년 5월 21일 19시 28분


▼김원의「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축제의 5월을 맞아 떠들썩한 캠퍼스를 보면서 80년대의 대학문화를 떠올린다. 대기업의 판촉무대와 판매대에다 각종 먹거리 좌판까지 가세해 발디딜 틈 없는 지금의 캠퍼스와 달리 그때는 금욕과 투쟁의 대학문화 곧 ‘운동문화’가 주도했다.

그 시절 ‘혁명의 마법에 취해 있던’ 대학생들이 술집과 다방에서 형성한 대학문화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것이, 별로 주목되지 않은 최신간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이다. 좋은 옷, 맛있는 음식, 세련된 행동을 죄악시하고, 그 대신 단순성, 전투성, 상스러움, 집단성의 문화를 대학가에서 지배적인 문화로 만든 것이 누구이고, 그것이 왜 90년대 들어서 그렇게 쉽사리 퇴조했는지를 이 책은 분석하고 있다.

독자적인 물질기반을 갖지 못한 사회집단인 대학생은 광주항쟁과 군부독재를 경험하면서 죄의식 속에 민중 노동계급을 신성시하여 자신들의 정체성의 근거로 삼았다. 그래서 ‘상상된 민중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운동 엘리트에 의해 창조된 이같은 운동문화는 급진적인 의례화 등을 통해 대학 내에서 급속히 확산되어 학생운동의 활력을 조성했지만, 점차 학생 대중을 규율 속에 가두고 대중적 자율성을 억압하는 부작용을 초래하였다. 그 결과 지배적인 운동문화와 충돌하던 학생대중의 주변문화가 새롭게 부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정치학 석사논문을 확대한 이 책에는 그 자신도 인정하듯이 ‘어지럽고 거친 면’이 많다. 특히 사회과학 개념이나 한국 정치상황 분석이 생경하게 끼어든 것 같은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그만큼 관련 학계가 이런 주제를 제대로 다룰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으로 보여 안쓰럽다.

그러나 참여자들의 인터뷰를 활용해 생생하게 복원된 세부 서술은 당시 대학생의 집단심성의 세계를 보여주면서 80년대를 상기하도록 촉구하는 의의가 있다. 80년대는 90년대를 제대로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지워져선 안될 기억이다.

백영서<연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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