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가 격동의 전환기였다는 상징성, 내년으로 다가온 정조 서거 2백주기 등이 최근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맞물리면서 정조시대 연구가 활발하다.
지금 우리에게 18세기는 어떤 의미인가. 정조라는 한 개인은 과연 어떤 존재였던가. 최근 출간된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돌베개)는 이러한 고민의 산물이다. 이 책 필자중 한사람인 유봉학 한신대교수(한국사)가 한상권 덕성여대교수(한국사)와 함께 정조시대의 현재적 의미를 점검해보았다.
▽유봉학〓역사 연구는 현재적 관심에서 출발한다.정조시대는 중세에서 벗어나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로 나아갔던 전환기였다. 지금 우리는 서구문화를 어떻게 수용하고 정치적 경제적 후진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의 과제를 안고 있다. 18세기는 우리에게 하나의 거울이다.
▽한상권〓18세기는 상당히 역동적인 시기였다. 정조시대를 들여다보면 개혁을 어떻게 해야하고 그 주체는 누구여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유〓정치적으로는 사림정치의 토대 위에서 탕평책을 통해 새로운 통합정치의 질서를 모색했고 경제적으로는 농업 생산력과 상공업 발전을 도모했다. 새롭고 건강한 정치 주도층이 등장했고 주체적 문화가 발전했다. 역사가 나아가야할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러나 정조 개인이 원했던 개혁이 모두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정조가 훌륭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동안 우리는 정조를 너무 과장해왔다. 이제 정조의 한계까지도 이해해야 한다. 이 책도 이러한 객관적인 평가의 일환이다.
▽한〓정조시대의 의미는 ‘민의(民意)의 성장’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재발견’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정조의 탕평책을 바라보는데 있어 왕권 강화에만 초점을 맞춰왔다. 중요한 것은 왕권강화의 내용이 무엇이고 누굴 위한 것이었는가, 그 저변에 숨어있는 주체 세력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주체는 물론 백성이다.
▽유〓정조는 훌륭한 군주다. 그러나 정조 한 사람의 역할을 극단적으로 미화해선 안된다. 몇년전 ‘정조가 독살 당함으로써 근대로 향하는 발전이 좌절됐다’는 내용의 소설이 있었다. 그러나 그같은 시각은 위험하다. 정조가 없으면 역사 발전이 없다는 말인가. 개인으로 역사를 보는 영웅사관의 발로다.
▽한〓정조는 치밀함 완벽함을 추구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과감성 결단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집권 초기엔 구석구석 백성의 소리를 직접 듣고 개혁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그러나 집권 후기로 가면서 구체적인 개혁정책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
▽유〓정조의 정치적 실패는 후반부에 친인척 등에 의존하려 했다는 데 있다. 그것은 자신이 세상을 뜨고 난 뒤 19세기 외척세도정치의 씨앗이 되기도 했다. 결국 개혁파를 완벽하게 정치세력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규장각을 통해 키운 젊은 인재들의 개혁 의지가 정조를 앞질러 나갔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던 탓에 임금인 정조도 성리학에 기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키운 진보적 지식인들은 새로운 외래 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성리학까지 넘어서려 했다. 거기에 정조의 고민이 있었다. 이것은 시대의 한계이기도 했다.
■「정조시대의 사상광 문화」정옥자 외 지음 / 돌베개 256쪽 10,000원 ■
정조시대의 정치 철학사상과 문화를 심도있게 고찰했다.
의리와 명분의 순기능을 강조하고 언론의 활성화 등을 살펴본 ‘정조의 사회통합사상’, 붕당의 조화와 견제를 꾀한 탕평론이 정조 말기(혹은 정조 이후) 어떻게 세도정치 쪽으로 기울어갔는지를 고찰한 ‘정조시대 정치론의 추이’, 주자서 편찬과 문예부흥운동 등 정조대 문화적 자신감을 잘 보여주는 ‘정조의 주자서 편찬과 그 의의’, 그리고 ‘정조시대 동아시아 인식’ ‘정조시대 서기 수용 논의와 서학 정책’ 등을 다뤘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