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세계의문학’여름호 특집은 ‘문화의 멜로화. 퇴행인가, 필연인가’라는 제목으로 이런 풍경을 ‘멜로’라고 진단한다. 필자들은 ‘멜로시대와 문화의 변형’(조형준), ‘여성성과 멜로, 그 은밀한 접속?’(고미숙·이상 문학평론가), ‘한국의 멜로영화 어떻게 볼 것인가?’(남재일·영화평론가) ‘멜로와 카타르시스’(마광수·소설가) 등의 제목으로 그 현상에 본격 접근했다.
멜로의 어원은 멜로드라마로 사전적 정의는 ‘감상적, 통속적인 드라마’다. 그러나 필자들의 해석은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순애보 우정 희생 등 익숙한 것들을 익숙하지 않은 새것처럼 세련되게 포장해서 내놓는 것이 멜로현상의 핵심이다. 지금 우리 문화의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집단정서를 요약한다면 ‘익숙한 것의 낭만화’ ‘자아에 대한 연민’이라고 해도 무리없을 것이다.”(조형준)
“아이 좋아” “또, 또” 등 몇 개의 짧은 대사가 반복되는 어린이프로그램 ‘텔레토비’가 어른들 사이에서조차 인기를 끄는 것은 멜로적 현상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반복’은 유아기의 특징적인 행동양식.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다면 ‘역사’는 사라지고 만다. 따라서 필자들은 같은 것을 변주하는 멜로의 득세가 문화의 유아기로의 퇴행과 탈역사화를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품는다.
고미숙은 문학쪽에서 멜로화의 징후를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 신경숙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양귀자의 ‘모순’, 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나와함께’ 등 최근작과 남성시인 안도현의 ‘연어’ 정호승의 ‘연인’ 등 이른바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꼽는다. 이 작품들은 90년대초 첨예했던 여성주의의식을 포기하거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기능을 상실하고 사랑과 순수를 설파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멜로가 득세하는 것일까? 국제통화기금(IMF)체제로 인해 위로와 희망의 전언이 소중해졌기 때문이라는 경제결정론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90년대가 해방후 대중의 반란이 없던 유일한 10년’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적으로는 어렵지만 체제 자체는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로 안정기에 접어들어 문화의 반역적 기능이 현저히 약화됐다. 여기에 영화 TV뿐만 아니라 문학 출판 등의 문화분야까지 자본제 메커니즘에 따라 기획생산돼 멜로의 대중화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조형준)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드는 힘, 그것은 체제를 유지하는 일종의 중력의 법칙인 바,문화의 멜로화는 거기에 의존해 용량을 증식해 간다.”(고미숙)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