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가. 그러나 10년이 넘도록 번역에만 매달려 온 번역가 김석희씨(46). 원어에 충실한 번역보다는 본질적 의미를 전달하는 ‘반역의 번역’을 외치는 그는 “외국어 실력보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는 능력이 번역의 첫째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지금까지 영어 불어 일어 등 90종 1백30여권의 책을 펴낸 그는 최근 국내 최초의 번역서 가이드북 ‘미메시스’(열린책들)의 창간호에 이윤기 김화영씨와 함께 출판인들이 뽑은 한국을 대표하는 번역가로 선정됐다.
6월1일 방한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비롯해 데스먼드 모리스의 ‘털없는 원숭이’, 홋다 요시에의 ‘고야’ 등이 대표작. 97년에는 ‘로마인이야기’로 한국번역가협회가 제정한 제1회 한국번역상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번역문을 읽을 때 원문이 그대로 생각나면 잘된 번역이 아닙니다. 번역가는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단순히 글자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인상과 느낌을 전달해야 합니다.”
그는 번역을 뒤집은 책읽기, 새로운 해석, 문예학의 한 갈래로 파악한다. 행간을 읽어내고 주름마다 숨결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는 번역을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무시, 독자들이 책을 읽기 힘들게 만든 것도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잘된 번역작품을 논문 한편처럼 중요하게 여기는 풍토가 필요합니다.”
97년에는 자기가 번역한 작품에 쓴 60편의 역자후기를 모아 책을 펴냈다. “50줄에 들어서면 창작을 하고 싶습니다. 가벼운 글쓰기보다는 인문학적 기반이 담긴 작품을 쓰고 싶다는 것이 소망입니다. 번역의 경력은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승훈기자〉raphy@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