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한국사회에서 지금껏 이 단어를 수식해온 말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지하철에서 빈자리가 나면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무서운’, 옆도 안 보고 제맘대로 차선에 끼어드는,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묻지마 관광’을 떠나는, 사생결단하고 일일연속극을 보는….
이 책은 그런 아줌마들을 ‘노동자’‘청소년’처럼 하나의 의미있는 사회집단으로 설정하고 그 삶과 위상을 본격연구한 결과물이다. 필자들이 논의근거로 삼은 것은 서울 등 대도시에 사는 만37∼57세 기혼여성 5백5명의 설문(1백52문항) 답변과 맞벌이 주부 1백2명의 면접인터뷰 기록. 이런 실제 자료들 때문에 한국 아줌마에 관한 ‘99년판 킨지보고서’로도 빗대어 부를 만하다. 숙명여대 동문인 7명의 필자들은 이미 ‘일곱가지 여성 컴플렉스’ 등을 펴낸 여성문제 연구자들이며 중년여성들이다.
가사노동, 어머니, 성과 사랑, 젊음과 아름다움, 슈퍼우먼 등 총7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성과 사랑’ ‘젊음과 아름다움’편이다.
왜 최근들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애인’‘정사’등의 책 드라마 영화가 인기를 모은 것일까. ‘밤이 무섭다’ ‘아내가 잘 때 몰래 들어간다’ 같은 우스갯소리가 희화화하듯 중년여성의 강한 성욕 때문일까. 필자들은 중년여성의 공허감을 성적 공허감으로만 보려는 시각은 원인과 결과를 바꾸어 말하는 것이라며 ‘성욕의 해소보다는 애인과 같은 애정어린 인간관계를 복원해 보려는 안간힘의 표현’이라고 분석한다.
‘외모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72.5%가 ‘그렇다’고 답한 데서 드러나듯 중년여성들은 ‘애인같은 아내’가 돼야 한다는 압박감에도 시달린다. 필자들은 이런 현상이 중년여성을 애인 이미지와 엄마 이미지로 차별화해 공략하는 화장품 패션산업의 마케팅전략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연구서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대중적 읽을거리가 되는 이유는 계모임에서의 수다, 응답자의 사적 고백, TV 여성잡지 등의 매체들이 생생하게 인용돼 오늘 한국 아줌마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안 제시에서는 현실성이 약한 약점도 엿보인다. 필자들은 전업주부가 자신의 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려면 취업여성과 연대해야 한다고 제안하지만 만날 기회가 없는 맞벌이주부와 전업주부가 어떻게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구체안은 없다. 그러나 ‘아줌마의 시기’를 ‘무시하거나 거부해야 하는 위기의 시기가 아니라 인생에서 더 없이흥미로운시기’로보는 시각전환을이끌어낸다는점에서이 책은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이제 속임수는 그만두자. 문제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 그때의 우리 인생의 방향이다. 이 늙은 남자, 이 늙은 여자, 이들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자.”(시몬 드 보부아르)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