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초가 ‘임꺽정’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진 제월리에 지난해 10월 문학비를 세운 충북민족예술인총연합회는 벽초의 전력(前歷)을 문제삼아 철거를 주장해온 대한상이군경회 등 괴산지역 3개 보훈단체와 최근 회의를 갖고 일단 문학비를 존치하기로 합의했다고 31일 밝혔다.
그러나 문학비가 온전하게 보존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민예총은 보훈단체들이 문학비 뒷면의 벽초 일대기 중 ‘선생’이라는 존칭과 ‘평생 민족의 자주독립과 문화발전을 위해…’ 등 일부 문구를 빼고 월북사실 등을 넣을 것을 요구함에 따라 문학비에서 일대기 기록판을 떼어냈다. 이 일대기 내용은 문학비 건립 당시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와 경찰 등의 사전검열을 받은 것.
조정주(趙丁柱) 괴산문학회장은 “문학비는 인물보다는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지만 보훈단체들의 아픔도 이해해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져 일단 일대기 기록판을 떼어냈다”고 밝혔다.
벽초 일대기의 새 문안작업을 맡은 김승환(金昇煥) 충북대교수는 “보훈단체들이 수용하기 힘든 문안을 고집할 때는 일대기를 떼어낸 채 그대로 두어 ‘분단의 상처’를 보여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 지역 보훈단체들은 “월북해 부수상을 지낸 인물의 문학비를 세운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현충일까지 자진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하겠다”고 별러왔다.
〈청주〓지명훈기자〉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