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 행차 때 한강에는 배다리가 놓였다. 백성들은 나룻배로 강을 건넜다. 기차가 이 땅에 등장하면서는 철교가 놓였다.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한강 인도교도 놓였다. 홍수로 떠내려 가기도 하고 전쟁통에 폭파되는 기구한 수난사를 겪으면서도 한강의 다리는 그 어깨로 수많은 바퀴와 발자국의 무게를 버텨냈다.
서울이 커지면서 한강은 서울 한가운데를 지나는 강이 되었다. 산업화가 되면서 다리는 더 필요했다. 대통령이 지시하는 다리의 모습은 단순 명쾌했다. ‘더 빨리, 더 튼튼하게, 더 싸게’. 목표에 부합하는 다리들, 양화대교 한남대교 마포대교 잠실대교 영동대교 천호대교가 속속 만들어졌다. 주어진 원칙을 만족시키는 다리의 형식은 그만큼 간단했다. 막대기 같은 교각을 세우고 널빤지 같은 상판을 얹어놓았다. 다리의 발달사를 보면 징검다리의 바로 다음 단계에 있는 구조형식의 다리였고, 청계천에 놓았던 돌다리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잠시 숨을 돌리면서 보니 외국의 다리는 건넌다는 기능 이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목표치에 ‘더 아름답게’라는 항목이 추가되었다. 성산대교가 첫 시험대였다. 공무원도 미술가도 색연필과 붓을 들고 나타났다. 다리에는 이상한 초승달이 극장간판처럼 덧붙여졌다. 엔지니어가 계산한 힘의 흐름을 뒤집어놓은, 그런 모습의 판을 붙이고는 동양적 곡선미가 가해졌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 가짜 눈썹을 붙인 다리가 태어난 것이다.
베트남전이 끝나고 위기의식이 높아졌다. 폭격을 받아 무너지면 복구하기 쉬우라고 물에 잠길만큼 낮은 다리, 잠수교도 만들었다. 그 다리가 좁다고 곧 2층으로 만들더니 유람선이 지나가야 한다고 뜯어 고쳐 다리는 롤러코스터 모양이 되었다. 동호대교 동작대교는 전철과 자동차가 함께 강을 건너다보니 하중조건이 복잡했다. 서너 가지 다른 모양의 교각 위에 또 서너 가지 다른 모양의 상판 구조체가 비빔밥처럼 비벼진 다리가 등장했다. 성수대교 서강대교의 교각과 상판은 서로 통하지 않는 말을 쓰는 엔지니어들이 설계해 마지막 순간 끼워맞춘 듯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한남대교는 확장공사에 들어갔다. 기존 다리의 네모난 교각 옆으로는 동그란 교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간 구조기술이 진보했다고 믿는지 새 교각은 기존 교각을 하나씩 건너뛰면서 세워지고 다리의 모양은 누더기가 되었다.
한강의 다리들은 한민족이 20세기에 남긴 부끄러운 유산들이다. 1985년 한강종합개발공사와 함께 이 다리들이 모두 대교(大橋)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런 다리들을 대교라고 부르는 우리를 후대는 어떻게 평가할까. 지금은 양화대교가 된 제2한강교의 준공식에서 대통령은 “수도 서울의 제2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웅장한 교량”을 자랑했다. 1965년의 그 ‘웅장함’은 20년도 안돼 확장공사에 들어갔다.
다리는 심지어 무너지기도 했다. 1백페이지 남짓의 빈약한 성수대교 공사보고서는 이미 이 다리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음을 실토한다. ‘과중한 공사감독관의 업무수행으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여 충실한 보고서를 만들지 못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 사람의 다리는 80년도 견디건만 시장의 임기에 맞춰 기필코 준공하라는 압력 속에 만든 다리는 15년 만에 무너졌다.
준공식에서 화려한 공로패를 주고 받은 이들은 떠났고 안타까운 희생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 되었다.
올림픽을 기념하자고 올림픽 대교도 만들었다. 현상설계를 거쳐 당선된 안은 기존의 한강다리들보다 한발 더 진보한 사장교(斜張橋).
외국의 예에 비하면 아담한 크기니 자랑스러이 올림픽을 기념할 수준은 되기 어렵다. 대신 잡다한 상징이 이야기되었다. ‘탑의 구성을 4주(四柱)로 하여 동양철학에서 우주만물의 근원으로 상징하는 연월일시(年月日時), 춘하추동(春夏秋冬) 및 동서남북(東西南北) 등을 나타낸다’. 24개의 케이블은 24절기를 윤회하는 한국의 절후와 24회 서울올림픽을 나타낸다고 한다.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하여 탑의 높이는 88m라고 한다. 과연 이런 상징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주탑이 오각형이면 음양오행을 뜻하는가? 8괘, 12지, 60간지를 상징하는 다리도 곧 등장할 지 모를 일이다. 케이블은 24개가 아니고 24쌍이니 한국은 48회 올림픽도 유치할 예정인 모양이다. 검객은 검술로 이야기해야 한다. 칼에 새겨진 문양과 주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탑에서 보이는 것은 엔지니어의 덧없는 백팔번뇌가 아닌가.
한강에서 가장 명쾌한 다리는 원효대교. 다리의 모양은 힘의 분포를 따라 결정되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재료만 사용되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탄탄한 근육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군더더기가 없는 교각과 상판은 가득 활시위를 담긴 어깨의 힘을 보여준다. 콘크리트로 빚어 내놓은 이 엔지니어링의 세계는 어느 작가도 쉽게 따라갈 수 없는 훌륭한 조각 작품이다. 지금 건설 중인 청담대교에 거는 기대도 그래서 커진다.
다리는 강의 얼굴이다. 그 얼굴을 그리는 이는 엔지니어다. 엔지니어의 다리 설계는 분명 창작의 과정이다. 조각가와 화가의 경우가 그렇듯이 그 과정은 논리적이기 어렵다.
그러나 그 결과물을 검증하는 엔지니어의 무기는 철저한 합리성과 명쾌함이다. 그 검증의 수단이 엔지니어를 조각가와 구분짓는 잣대다. 도의 세계는 통한다고 했던가. 그렇게 만들어진 다리는 제대로 만들어진 조각작품처럼 아름답다. 그것은 압도하는 박력을 가진 아름다움이다. 프랑스 조각가 부르델의 조각처럼 탄탄한 근육의 다리로 우리가 한강을 이야기할 날은 언제나 될까.
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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