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사회학」박재환/일상성·일상생활연구회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336쪽 12,000원▼
「피같은 술」을 엎지르지 마라? “술을 마신다는 것은 단지 알코올을 위장에 들이붓는 생물학적 행위로만 설명할 수 없다. ‘피같은 술’이란 표현에는 술을 마시면서 동일한 ‘문화 혈액형’을 갖게 된다는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다.
한국과 같은 이른바 ‘주본주의(酒本主義)사회’에서 술자리는
커뮤니케이션의 장(場)이며 술은 강력한 ‘미디어’다.”
풍류대상이나 현대의학의 병리연구 대상으로만 치부돼 왔던 술.그러나 술에는 폭력과 섹스, 여가와 노동, 공동체 질서와 일탈 등 무수한 사회적 의미가 담겨 있다. ‘자살’을 개인적인 차원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사실’로 파악한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처럼 이 책에서도 ‘술’을 엄연한 사회적 사실로 규정한다.
‘일상성―일상생활연구회’소속 11명의 사회학자들이 공동집필했다. 94년 ‘일상성의 사회학’이란 책을 펴낸 이 학회는 본격적인 첫 연구로 ‘술’이란 주제를 택했다. 8년여에 걸친 연구작업 끝에 △술과 노동 △술과 공동체 △의례(儀禮)로서의 술 △술과 섹스 △알코올과 연줄의 한국사회 △술과 폭력 △술과 환각 및 중독 △게이바 △신세대의 술집,
쉰세대의 술집 등 다각도에서 술을 조명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음주는 고대 제사의식이나 결혼식 합환주(合歡酒) 등 의식적인 행위에서 출발했지요. 오랜 기간 논두렁에서 마시던 농주나 집짓는 사람들의 막걸리처럼 술은 노동의 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산업화과정에서 노동의 긴장감이 더해질수록 술은 독주(毒酒)로 변해 갔고 결국 현대의 접대문화에서는 엄청난 산업으로 발전했지요.”(박재환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
술은 그 사회의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틀. 한국식 ‘대작문화(對酌文化)’와 서구식 ‘자작문화(自酌文化)’를 비교해 두
사회의 공동체문화와 개인주의 문화적 배경을 추출해낸다.
‘일상성의 사회학’은 60년대 말 유럽에서 새롭게 대두된 사회학의 한 조류. 이는 마르크스주의 등 합리적 선택을 하는 인간형을 가정한 거대담론이 위기에 봉착했다는 의식에서 출발한다. 엘리트 중심의 사관을 극복하고 서민들의 사소한 일상에서 의미를 찾는 역사학계의 ‘아날학파’와 궤를 같이 한다.
기성 사회학계에서 사용하는 ‘통계분석’보다는 참여관찰이나 인터뷰등 인류학적 방법이 많이 사용됐다. 부산 완월동의 게이바에서 보름동안 생활한 연구원, 술과 폭력과의 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병원 응급실이나 경찰서 유치장에서 밤을 샌 학자의 체험이 글에 녹아 있다.
전승훈<동아일보 문화부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