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키드]부산 장덕기씨네 『성적보다 사회성』

  • 입력 1999년 6월 7일 18시 45분


장덕기씨(39·내과의원장·경남 김해시)와 부인 염정애씨(39·부산 부산진구 개금동) 가정의 부엌 한쪽 벽에는 세계지도와 한국지도가 걸려 있다. 아들 현지(12·개화초등6)와 딸 현빈(10·〃4)은 매일 아침 식사 후 세계지도를 가리키며 전날 밤 CNN월드뉴스에서 들은 내용을 ‘브리핑’한다.

“코소보에서는 유니세프공연단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판토마임을 했어요.” “일본에서는 골프연습장 철골이 강풍에 넘어져 주택가를 덮쳤어요.”

★조기유학과 조기귀국★

현지는 6세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5가지 영어학습지를 한꺼번에 구입해 염씨가 직접 가르쳤다. 현지와 현빈은 95∼96년 호주 시드니의 페넌트힐공립학교에 다녔다. 염씨도 함께 갔다.

처음 6개월 동안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이언트 베이비’라고 놀림을 받았다. 매일 밤 “아빠가 창 밖에 런닝셔츠 차림으로 있다”며 헛 것을 본 얘기를 했다. 그뒤 학교생활에 적응이 되면서 안정되는 듯 했다. 그런데 엉뚱한 문제가 생겼다. 장씨는 국제전화로 듣는 아이들 목소리가 갈수록 무덤덤해지는 것을 느꼈다. 염씨는 “영어도 좋지만 아이들이 아빠를 잊을 것 같다”며 “돌아가겠다”고 우겼다. 장씨가 “영어 감각을 익힐 때까지만 참으라”고 ‘강요’해 이들은 1년여를 더 버티다 4,5년 예정으로 시작한 호주 생활을 접고 97년 초 귀국.

★무서운 아빠★

가족이 호주에 있는 동안 장씨는 교육학을 공부했다. 교육학개론, 교육심리학, 루소의 ‘에밀’ 등 교육관련 서적 20여권을 통독했다. 의대시절부터 PC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현지에게 컴퓨터를 가르치기 위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며칠씩 밤을 새워가며 원서 2백여권을 독파했다. 부품을 구해 PC를 조립하고 ‘환자관리프로그램’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수준까지 올랐다. 현지는 호되게 PC를 배웠지만 아버지가 고생하며 독학을 한 것을 알기 때문에 반항하지 못했다. 요즘은 “아빠가 저를 위해 노력하시는 것 잘 알아요. 고마워요”라고 말한다.

★스타크래프트★

현진 현빈은 학습지 공부를 하지 않는다. “학교 성적이 좋은 아이가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은 아니다”는 게 초등학교 교사출신인 염씨의 지론. “지금 습득해야 할 것은 사회성이지 성적이 아닙니다. 요즘 스타크래프트를 못하면 친구를 만들기 힘들지요.” 이 게임의 유해성 논란에 대해 장씨는 “스트크래프트보다 TV드라마가 훨씬 유해하다”고 주장. PC방에도 현지와 함께 다닌다.

★전문가가 돼라★

현지를 위해 펜티엄Ⅲ급 PC 2대, 펜티엄Ⅱ, CPU(중앙처리장치)가 두 개 들어있는 듀얼펜티엄, 일반 펜티엄 등 모두 5대의 PC를 현지 방에 들여 놨다. 현지는 PC 한 대에 기업체용 운영체계인 윈도NT를 설치하고 나머지 PC를 연결해 근거리통신망(LAN)을 구축했다. 햄(HAM)으로 사귄 친구들과 전자우편을 주고 받는다. ‘뭘 하든 전문가수준으로 하라’는 정씨의 철학이 몸에밴 현지는 여름방학에는 개인홈페이지를 운영할 계획.

★세계를 상대로★

식탁에서 현지 현빈은 음식을 소리내 씹지 말 것, 음식을 입에 넣은 채 말하지 말 것, 수저가 그릇에 부딛혀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할 것, 반드시 개인 그릇에 덜어 먹을 것 등 ‘서양식 매너’를 교육 받는다. 정씨 부부는 아이들이 ‘외국인을 덤덤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 왔다.

〈부산〓나성엽기자〉news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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