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의 향기]황인숙「시장에서」

  • 입력 1999년 6월 13일 19시 53분


그를 위해 무얼 살까 둘러보았죠.

수줍은 제비꽃에 벗은 완두콩.

그에게는 아무짝에 소용없는 것.

그럼그럼 딸길 살까 바나날 살까?

아니면 익살맞은 쥐덫을 살까?

그를 위해 무얼 살까 둘러보았죠.

한 쾌의 말린 뱀, 목에 늘인 할아범.

아아아아 재밌어 이걸 사줄까?

뽀골뽀골 미꾸라지 시든 오렌지

아니면 특제실크덤핑넥타이.

아아아아 재밌어 이걸 사줄까?

복작복작 밀리며 걷는 내 손엔

한 쪽엔 아이스크림 한쪽엔 풍선

농담처럼 절뚝절뚝 뛰는 지게꾼.

그 뒤를 바싹 쫓아 빠져나왔죠.

주머니에 뭐가 있나 맞춰보아요.

바로바로 올림픽 복권이어요.

만약에 첫째로 뽑힌다면은

아아아아 재밌어 너무 재밌어

풍선처럼 그이는 푸우 웃겠죠.

―시집 ‘새들은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놓고’(문학과 지성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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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붓는 것 같이 기분이 언짢을 때면 일부러 찾아읽는 시. 이 시인의 이 발랄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와 저기를 마음껏 넘나드는 이 자유와 이 상상력은? 시를 따라 시장 안을 종종걸음치다 보면 어느덧 내게 안겨지는 웃음이라는 선물. 푸우!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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