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품은사라졌다.그것도 75년 발굴직후 불에 타서 재가 돼버렸다. 보존처리 과정에서전열기과열로불타버린 것이다.
참나무로 만든 14면체의 이 기하학적 주사위는 신라인의 낭만이 물씬 풍겨나는 소중한 문화유산. 각 면에는 ‘3잔일거’(三盞一去·술 석 잔 한번에 마시기), ‘음진대소’(飮盡大笑·술 다 마시고 크게 웃기), ‘임의청가’(任意請歌·마음대로 노래 청하기), ‘농면공과’(弄面孔過·얼굴 간지럽혀도 가만히 있기), ‘공영시과’(空詠詩過·시 한 수 읊기) 등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신라인들은 술을 마시다 흥에 취하면 이 주사위를 던지면서 윗면에 나오는 글귀를 따라 놀이를 했으니, 얼마나 멋진 풍류인가.
75년 여름 안압지에서 발굴된 이 주사위는 사진촬영과 실측을 마치고 서울로 옮겨져 곧바로 보존처리에 들어갔다. 문화재연구소는 특수 제작한 오븐에 주사위를 넣고 수분을 제거하기로 했다. 그 오븐은 자동으로 온도가 조절되는 첨단 기기였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주사위는 다음날 재로 발견되었다. 자동조절장치가 고장나 오븐이 과열됐던 것. 어처구니 없는 사고였다. 당시 경찰은 전기 과열로 결말지었고 보존처리 담당자는 문책을 당했다.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보존처리에 앞서 유물 조사를 했다는 점. 보존처리를 먼저 했더라면 복제품 재현도 불가능할 뻔했다.
72년여름경기양평 팔당수몰지구 발굴 현장에서도 예기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다.발굴도중갑자기 홍수가 밀어닥쳤다.
홍수와 태풍은 발굴의 가장 큰 장애물. 발굴지역이 강변일 경우 더욱 그렇다. 아니나 다를까. 서울대박물관이 발굴 상태로 지표면에 놓아두었던 석기 몸돌(석핵·石核·돌날을 떼내고 남은 원래의 돌)이 빗물에 휩쓸려 내려갔다. 그리곤 그걸로 끝이었다. ‘발굴 순간, 문화재는 훼손되기 시작한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발굴에서 전시까지. 문화재 다루기에 한치의 오차도 용납될 수 없다는 대윈칙을 새삼 일깨워준 뼈아픈 교훈들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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