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우리 지성계의 담론은 유감스럽게도 현실과는 별 관계가 없다. 우리 지식인의 문제의식은 자기가 딛고 선 현실에서 나온 게 아니라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다. 즉 제 주변의 문제를 다 제쳐 두고, 기껏 남의 문제를 수입해다 고민하는 거다. 그러니 지성계는 공허해지고, 그 결과 사회의 여론은 조야한 수준에 머물 수밖에. 문제가 터지면 사후에, 그것도 ‘원인’을 찾는 대신 ‘범인’을 색출해 도덕적으로 성토나 하고….
하나의 텍스트가 들어오면 종교경전화한다. 그 텍스트 주변엔 ‘동인(同人)’ 비슷한 그룹이 형성되고, 그 내부엔 강한 ‘동질성’이 지배하기에 비판이 있을 수 없다. 그 결과 비판의 고삐에서 풀린 담론은 야생마처럼 날로 과격해진다. 이 집단 밖에는 또 다른 경전을 모신 집단들이 있다. 각 집단들은 서로 강한 ‘배타성’을 보이기에 대화가 불가능하다. 하긴 한 사람의 인격과 그 사람의 견해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비판은 곧 인격모독. 누가 그런 모험을 하겠는가?
지식인은 제 현실의 문제를 주제화해야 한다. 그리고 타인과의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제 견해를 정교한 형태로 이론화해야 한다. 내 글쓰기는 그 추동력을 주기 위한 것, 즉 각 의견그룹들과의 ‘차이’를 만들어내 토론과 논쟁의 엔진이 돌아가도록 시동을 걸려는 시도다. 나는 내 견해가 상당히 온건하다고 믿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에선 오히려 내가 튀어보인다. 도저히 정당화할 수 없는 초강력 테제를 마구 주장하는 무책임한 사람들이 아니라. 요상한 일이다.
진중권 (독일 베를린자유대·언어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