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집중진단]최종욱/「비판」에도 비판 요구된다

  • 입력 1999년 6월 21일 19시 57분


한 사회가 발전, 진보하기 위해선 그 사회의 부조리한 관행과 제도 자체에 대한 비판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비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비판의 공정성이다. 비판이 시대와 사회에 대한 하나의 ‘무기’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비판 그 자체의 객관성이 확실하게 담보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반성’이 없는 비판은 또하나의 도그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양의 경우 데카르트의 ‘회의’, 베이컨의 ‘우상파괴’, 칸트의 3가지 형태의 ‘이성비판’, 헤겔의 ‘정신현상학’,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딜타이의 ‘역사이성 비판’에 항상 ‘반성’이라는 행위가 작동하고 있다. 동양에서도 비판은 언제나 ‘역지사지(易之思之)’를 동반한다.

요즘 우리사회에서는 비판이 중요한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다. 근대화(현대화)가 시작된 60년대 이후, 우리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그 변화가 동반하는 부정적 결과를 둘러싸고 ‘비판’은 사회정의와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등장했다. 심각한 빈부격차, 군사독재와 민주화를 위한 시민들의 투쟁은 ‘침묵이냐, 비판이냐’하는 문제를 모든 국민들, 특히 지식인들에게 양심의 문제로 부각시켜 놓았다. 왜냐하면 비판을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이 정부로부터 고문과 억압, 심지어는 죽음을 강요받았고 그만큼 이 땅에서의 비판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양심을 건 비판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모두의 고민이 있다. 왜냐하면 비판을 행하는 행위자 자신이 인간인 이상 그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 특정 단체의 당파성과 지연 그리고 학연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운 것도 아니고 비판가 자신이 정치적 변화로부터 벗어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판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상품’으로 시장에서 판매될 때 그 비판은 더 이상 시장과 정부에 대한 새로운 비판(제2의 비판)이 될 수 없는 위험성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판에는 늘 ‘반성’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비판과 그 비판의 객관성을 동시에 꿰뚫어볼 수 있는 지혜가 무엇보다 필요한 때이다.

최종욱 (국민대 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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