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자들은 “가입할 때는 세금을 떼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제와서 바뀐 규정을 내세워 과세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하지만 정부와 은행측은 “법과 약관에 따라 시행할 뿐”이라며 요지부동.
금융계는 “정부의 어설픈 업무처리로 금융상품의 공신력이 큰 손상을 입었다”고 지적했다.
▽사례〓94년 6월 비과세 상품인 근로자 장기저축에 5년만기로 가입한 정말례씨(49·여·경기 의정부시)는 며칠전 예금을 찾으러 갔다가 세금을 내라는 통보를 받았다.
매월 50만원씩 5년간 꼬박 부은 정씨의 통장엔 원금 3000만원과 이자 915만원 등 3915만원이 들어있다. 은행측은 이자소득세 등으로 67만원을 떼고 나머지를 지급했다.
정씨가 “처음 약속과 틀리지 않느냐”고 따졌지만 창구직원은 “법이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최근 각 은행 창구에서는 만기가 돼 예금을 찾으려는 근로자 장기저축 가입자들이 뒤늦게 세금이 부과된 사실을 알고 은행에 항의하는 소동이 심심치않게 벌어지고 있다.
91년초 봉급생활자의 재산증식 수단으로 선보인 근로자 장기저축은 세금이 전액 면제되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매년 5조원 이상의 수신고를 기록하는 등 인기가 높았다. 은행권에서는 93∼94년중 신규 가입자가 100여만명에 이른 점을 감안할 때 당시 5년만기 상품을 택한 사람중 10만여명이 정씨와 비슷한 피해를 보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어설픈 법 개정 탓〓94년말 개정된 조세감면규제법(현 조세특례제한법)은 96년 1월부터 기존 비과세 저축의 이자소득에 대해 10%의 세금을 부과하도록 규정했다. 단 94년 9월말 이전에 가입한 예금자는 최초 계약일로부터 3년간 면세혜택을 인정받고 그후 발생하는 이자소득분에 대해서만 세금을 내도록 했다.
재정경제부는 당시 금융소득 종합과세를 준비하면서 세금우대형 상품을 전면적으로 재정비하려는 취지에서 법을 고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면세기간을 3년으로 한정한 것은 이 정도면 웬만한 선의의 가입자는 대부분 불이익을 받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은행의 홍보가 미흡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구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은행 약관에도 ‘비과세가 원칙이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조세감면규제법에 따라 처리한다’고 돼있어 가입자들이 세금을 돌려받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시중은행의 재테크 전문가는 “소급적용의 소지가 있는 법 개정으로 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며 “세금우대 상품을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남긴 사례”라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