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닥다리같은 얘기지만 본격소설과 대중소설을 구분할 수 있을까? 특히 통속적이어야 재미있는 연애소설에서라면?
「토마토」「오렌지」등 과일 연작(?)을 차례로 발표한 정정희의 신작「연애」는 이 질문을 계속 떠오르게 한다. 약간은 삶에 무관심한 혼자 사는 여작가. 병원장 아버지를 둔 덕에 약간은 허술하게 살고 있는 잡지사 남자기자. 이 두사람이 일로 만나 연애 기분을 느껴 같이 자고, 그러다 헤어진다. 헤어지게 된 까닭은 그 두 사람의 과거 때문이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소재와 뻔한 전개다.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소할 밖에 없는 사건들이 독백체로 시시콜콜 중계된다. 단 독자는 같은 상황과 사건을 두 사람이 어떻게 다르게 느끼는지 알 수 있다. 그게 이 소설의 계속 읽게 해주는 모티브다.
작가도 "대단한 걸 쓰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단지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겪는 일상의 사소함과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기록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전업작가가 자기 소설에 대해 쓴 자평치고는 너무 성의없다.
이 소설에서 연애는 둘만의 문제로 그려진다. 물론 소설에 두사람만 나오는 건 아니다. 그러나 두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둘의 기억 속에 있는 사람들이다. 둘 사이의 어긋남에 영향을 미치는 건 그들의 기억일 뿐인 것이다.
연애는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이 소설에는 그 생동감이 없다. 둘의 연애는 그저 사적 독백에 그치고 만다. 아마 작가는 소재의 통속성을 형식으로 극복하려 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세계의 박진감을 담아내지 못한 형식은 소재 자체의 통속성에 함몰되고 말았다. 그게 바로 이 소설이 통속성이라는 단어와 연결되는 까닭이다.
임성희<마이다스동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