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폴크스바겐을 타고…」/인간중심 경영철학

  • 입력 1999년 6월 25일 18시 39분


▼「폴크스바겐을 타고 나는 날았다」다니엘 괴드베르 지음 김평희 옮김 참솔 펴냄 294쪽 7500원 ▼

다니엘 괴드베르(57). 한국인에겐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적어도 유럽 자동차시장에서 그의 이름은 ‘전설’이다.

가난한 고등학교 독일어선생에서 말단 자동차 세일즈맨으로의 변신. 한 달에 자동차 42대를 파는 탁월한 영업력으로 불과 서른세살에 시트로엥 독일법인 사장이 된 프랑스인. 뿐인가. 그는 시트로엥 르노 포드 폴크스바겐 등 일류 자동차회사로만 스카우트되며 최고경영자로 활약했다.

이 책은 그의 자서전. 그러나 화려한 자수성가담이나 탁월한 영업전략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려 드는 틀에 박힌 지침서는 아니다. 독일어 원제 ‘어항 속에 빠진 새처럼’은 저자의 집필의도를 압축한 말. 물고기들이 사는 어항에 뛰어든 새처럼, 그는 늘 전통적 영업방식이나 조직논리와는 다른 길을 택하는 ‘튀는’ 인물이었고 결국 93년 폴크스바겐의 ‘월급사장’ 자리에서 밀려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유럽의 지도층 인사들로부터 ‘흘러간 인물’이 아니라 ‘미래형 경영자’로 인정받는다. 96년 독일에서 출간된 후 72주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이 책은 그 이유를 가늠케 한다.

저자의 경영술 밑바닥에는 ‘사람중심’철학이 있다. 자동차 내부구조의 첨단경쟁이 치열해지던 80년대에 그는 “자동차에서 나의 관심사는 부품이 아니고 그 차를 운전하는 인간”이라며 비싼 신기술차보다 단단하면서도 값싼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방안찾기에 골몰했다.

그는 자동차업계의 다른 사장들로부터 무수히 ‘제 둥우리를 더럽히는 새’라고 욕을 먹었다. 환경운동가들과 함께 자동차 배기가스 줄이기에 앞장서는가하면 독일의 아우토반에서도 속도제한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업계 이익이라는 차원에서보면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장기적으로 이 산업을 계속 존립할 수 있게 하려면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자동차로 인해 생태학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대한 주의를 환기해야 한다”

저자는 ‘최고경영자는 외롭다’는 식의 자기연민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계급의 최고봉에 도달하면 자기 자신만 보게 된다. 감히 반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경영자의 자기중심주의는 병균처럼 방해받지 않고 회사 전체로 퍼지게 된다’고 동료 경영인들에게 충고한다.

이 책은 편집디자인에서 ‘바쁜 직장인들을 겨냥한다’는 출판사의 전략이 드러나는 게 특징. 페이지 양 옆으로 주요 귀절들을 발췌, 정리했다. 번역자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으로 장기간 유럽에 근무한 40대 샐러리맨.

출판사측은 “성공의 꿈을 가진 세일즈맨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제목을 바꿨다”고 원제와 동떨어진 제목을 붙인 이유를 설명. 그러나 진정 야심있는 독자라면 저자로부터 경영전략과 영업술을 배우기 전 이런 말에 먼저 귀기울여야 할 것 같다.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엘리트층에 진입하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 계층은 사회적으로 큰 책임이 요구되는 집단임을 알아야 한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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