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아버지들의 아버지(상)」

  • 입력 1999년 6월 25일 23시 15분


▼「아버지들의 아버지(상)」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266쪽 6500원▼

진화론을 소재로 한 장편 추리소설.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스릴을 맛보면서도 인간의 본질과 기원을 과학적으로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다.

저자는 ‘개미’‘타나토노트’ 등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프랑스의 젊은 작가. 이번에는 고생물학과 인류학에 대한 방대한 자료수집과 관련학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토대로 진화론에 관한 흥미로운 가설들을 소설로 압축했다.

모두들 다가올 새 밀레니엄에 대한 전망을 외쳐대고 있지만 작가는 정반대로 우리에게 370만년 전의 과거로 돌아갈 것을 요청한다. 인류가 진정 가고 싶은 곳으로 가려면 출발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는 현생 인류와 원인(猿人)을 연결하는 중간단계의 존재, 즉 지구상에 나타난 ‘최초의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최초의 인간’에 관해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한 고생물학자가 의문의 메모를 남긴 채 돌연한 변사체로 발견된다. 우연히 이 사건을 접한 주간지 미모의 여기자는 전직 과학기자와 함께 사건의 전모를 밝혀나가고, 이 과정에서 진화론연구에 얽힌 학계내부의 갈등이 드러나는데…. 이들은 용의선상에 오른 과학자들을 차례로 만나다가 결국 범인을 찾아 인류의 시원지(始原地)인 아프리카까지 날아가 추격전을 벌인다.

이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하나는 두 기자가 살인사건의 베일을 벗겨나가는 현재의 장면들. 다른 하나는 ‘최초의 인간’이 어떻게 살았는가를 상상력을 동원해 묘사한 과거의 장면들이다. 네 발로 기거나 두 발로 직립보행하는 ‘최초의 인간’의 동물적 생존투쟁의 삶, 그 속에서도 그의 머리 어딘가에 ‘생각의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하는 경이로운 순간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전속력으로 뒤좇아 오는 하이에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 공포가 엄습해온다. 갑자기 자신이 몸에서 빠져 나와 멀리서 자기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자 자신의 삶도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수한 현상들 중의 하나라는 생각 뿐…’

작가는 특히 두 이야기를 극명하게 대비, 폭력 음식 사랑 등에서 문명이 발달한 현대인이나 ‘최초의 인간’이 서로 다를 바 없음을 밝혀낸다. 작가는 결국 ‘인간은 진화를 마친 존재가 아니라 아직도 계속 진화하고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던져 준다. 충분히 진화했다는 착각을 깨뜨릴 때 파괴적인 본성도 순화(진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진화론에 관한 어렵고 복잡한 가설들을 경쾌하고 흥미있게 다룬 것은 좋았다. 그러나 만화적 추리로 흘러 다소 경박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권은 7월 중 출간된다.

〈윤정국기자〉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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