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어떻하죠?]김주선/귀와 마음을 함께 열자

  • 입력 1999년 6월 27일 19시 01분


「엄마에게 두 가지 부탁이 있어. 하나는 편안하게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고 다른 하나는 내가 다시 태어나더라도 이런 곳에 태어나지 않도록 기도해 줘.」

고교 2년생 아들의 책상 위에서 발견한 쪽지를 보는 순간 충격을 받은 어머니가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상담실로 전화를 걸었다.

“좀 난폭한 편이었어요. 자기 동생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기도 해 좀 야단을 많이 쳤지요.”

외국에서 살다 고국에 돌아온 아들은 한국말이 서툴러 반 아이들의 놀림감이 됐다. 반 아이들은 이질적인 문화권에서 살다 온 그에게 한국말을 가르쳐 준다며 온갖 욕설을 알려주었다. 잘 알아듣지 못하는 은어와 자기들끼리의 언어로 이 아이를 따돌렸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톨이가 돼가던 아이는 그 분노를 집에서 여동생에게 퍼부었다. 사소한 일에 의자를 내던진다든지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설을 퍼붓는 식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부모로부터 야단을 맞기 일쑤였고 집안에서도 구제불능으로 치부당하기 시작했다. 결국 아이가 선택한 길은 이 세상을 포기하자는 것이었다.

“엄마가 나한테 관심이 있어요?”

“엄마가 나에게 하는 말은 ‘일어나라’ ‘밥 먹고 학원에 가라’ 단 두마디예요.”

부모학교에 오는 어머니 가운데는 세 자녀를 둔 어머니가 더러 있다. 이들은 일찍 결혼해 첫 아이를 멋모르고 키우다 보니 초등학교 5,6학년이 되면서 큰 아이와 관계가 악화돼 더 이상 부모로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어 다시 시작해 보자는 뜻에서 부모교육을 받게 됐다고 고백했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는 방법과 사랑을 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모두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었지만 누구도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전통사회의 대가족 제도가 가지고 있던 교육적 기능은 핵가족이 되면서 그 기능을 잃었다. 아버지의 헛기침도 위력이 없어졌고 어머니의 눈물 젖은 회초리도, 자애로운 할머니의 모습도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에게 일상적으로 하는 말을 모두 나열해 보면 얼마나 많은 말이 명령 지시 비난 비교 투성이인가. 밥만 먹여주고 과외만 시켜주면 아이들의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눈짓과 몸짓 표정으로 수많은 말을 하지만 부모는 알아채지 못한다. 귀로만 듣지 말고 눈으로 듣고 마음으로 깊이 들어 주어야 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수많은 방법으로 자살 의도를 다른 사람에게 표출한다.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삶을 갈구하고 있는지, 그들이 얼마나 사랑에 목말라 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김주선<지역사회교육협의회·프로그램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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