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만났습니다
이스크쿨이라는 이름의 호수가
천산의 맑은 눈망울을 떨구고 있는 땅
그 여자가 돌 몇 개를 굴려
내 인생의 앞날을 읽어주었습니다
나 두 귀 쫑긋거리며
또르르 또르르 물방울처럼 굴러나가는
내 인생의 마른 풀숲 하나 보았습니다
어디선가 썩어 문드러질 육신
죽어 지옥을 방황할 영혼
그 여자의 점괘들이
비비새의 울음소리가 되어
저물녘 사과나무 가지에 걸렸습니다
그날 밤 이스크쿨 호수의 수면 위에
육탈이 덜 된 한 사내의 뼈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바람도 되지 못하고
꽃도 되지 못하고
더더욱 새는 꿈꾸지 못한
한 사내의 이름이 작은 물살 되어
천산의 기슭까지 천천히 밀려 나갔습니다
―시집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열림원)에서
이따금 어디선가 또 하나의 나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몽골이나 남미의 처음 가보는 장소,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태생지나 피붙이처럼 친숙하게 느껴질 때면 더욱. 돌점치는 여자, 그 여자는 알고 있겠지. 나에게서 벗어나서 어디선가 다른 생을 살고 있다는 또 다른 나를. 한 쪽 뿐인 영혼들이 때로는 천산의 기슭까지 천천히 밀려간다는 것을.
신 경 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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