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신라인들의 성(性)생활. 신라 화랑도의 전기인 ‘화랑세기’에 이같은 내용이 가득하다면 이를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 내용을 담은 ‘화랑세기’ 필사본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이종욱 서강대교수(한국사)가 이 필사본을 번역해 ‘화랑세기―신라인의 신라 이야기’(소나무)를 출간하고 동시에 진짜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둘러싼 진위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화랑세기는 신라의 문장가 김대문이 통일신라초기인 704년대에 편찬한 화랑에 관한 전기. 이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이 문헌이 간단히 언급되고 있으나 원본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문제의 필사본은 일제시대인 1934∼1945년 사이 일본 궁내성의 왕실도서관에서 일하던 박창화라는 인물이 이 곳에 소장 중이던 ‘화랑세기’를 베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필사본에는 두 가지 종류가 전하고 있다. 하나는 1989년 부산에서 발견된 32쪽짜리 발췌 필사본이고, 다른 하나는 1995년 공개된 162쪽짜리 필사본. 32쪽짜리는 162쪽짜리의 내용을 추려 적은 것이다.
필사본에 대한 진위논란은 32쪽짜리 필사본이 부산에서 처음 발견된 89년에 시작됐다. 이후 162쪽짜리 필사본이 공개된 95년에도 한 차례의 진위논란이 일었다. 두 차례 모두 학계의 대세는 위작설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혼음(混淫) 등 문란한 성관계를 담은 내용이 ‘삼국사기’에 나오는 내용과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교수는 “400여 신라인들의 성관계나 당시의 권력 구조를 어떻게 한 개인이 조작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위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유교적 시각에서 신라의 성문화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신라인의 시각으로 그들의 성을 바라보아야 하고 △‘화랑은 순국무사(殉國武士)’라는 도식적 틀에서 벗어나야 하며 △2차 사료인 ‘삼국사기’와 차이가 난다고 해서 위작이라고 보아선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맞서 위작설을 주장하는 노태돈 서울대교수(한국사)는 △그런 문란한 성으로 가족과 국가가 유지될 수 없고 △삼국사기에 나타난 화랑의 모습과 큰 차이가 나며 △수록된 향가 역시 위작이라는 점 등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진위를 확정짓는 것이 쉽지 않다. 박창화가 이미 67년 세상을 떠나 필사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데다 일본은 박창화가 보고 베꼈다는 궁내성의 ‘화랑세기’를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화랑세기’가 있는지조차도 의문이다. 게다가 ‘삼국사기’ 등에 ‘화랑세기’가 단편적으로 인용되고 있어, 이 책이 어떤 형식으로 이뤄져 있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도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