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책]무라까미 류「달빛의 강」

  • 입력 1999년 7월 6일 19시 50분


▼「달빛의 강」무라까미 류 양억관 옮김 문학동네 / 6500원 167쪽 ▼

일본의 두명의 무라까미는 소리 소문없이 한국의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80년대 후반 무라까미 하루끼의 「상실의 시대」는 입소문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90년대들어 무라까미 류가 합세했다. 한동안 금서였던 「한없이 투명한 블루」는 단번에 류를 인기작가로 만들었다. 무라까미 류에 대한 열광은 하루끼를 능가해서, 무라까미 류를 좋아하는 한국의 젊은 문화예술인들은 `류가 자신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한 글을 모아 책을 내기까지 했다.

이 책은 류가 1997년 발표한 단편집「백조」를 번역한 것이다. 그의 작품들이 그러하듯 이 책의 소재들도 심상치 않다. 마약과 섹스, 일탈과 광기, AIDS와 창녀. 9편의 단편소설 안에 이런 심각한 소재들이 경쾌하고 가벼운 터치로 직조되어있다. 그래서 그런지 버거울 것 같은 그의 소설은 쉽게 읽힌다. 그의 소설은 마치 아름다운 그림처럼, 영화처럼 독자를 매혹시킨다.

어찌보면 일탈적이고 기기묘묘한 등장인물들의 나른한 일상. 류는 독자들이 이들과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재주를 갖고 있다.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술과 마약에 취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낯선 여인과 벌거벗고 누워있는 등장인물의 삶에 자신을 투사해 볼 수 있다. 그것은 삶의 방식이 달라도 공유하는 아픔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문득 감지되는 방향감 상실, 넘쳐나는 욕망과 그에 따른 좌절. 현대인의 겪고 있는 이런 아픔들을 류는 예리하게 파헤쳐낸다.

이런 이유로 그의 소설엔 중독성이 있다. 술에서 깨어나면 괴로울 줄 뻔히 알면서도 술에 취한다. 그처럼 읽고나면 허망하고 허탈할 줄 알면서도 계속 그의 소설을 읽게 된다. 하루끼의 소설도 그렇다. 하지만 류의 소설은 훨씬 더 파격적이다. 만약 중독된 삶이 싫다면 그의 소설을 접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지만 현대라는 복잡한 시절을 좀더 진하게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 펼쳐볼 만하다. 단 중독자가 되어 소설과 현실을 혼동해도 그건 당신의 책임이다.

임성희<마이다스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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