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부모님은 제게 늘 “남을 믿지 말아라, 세상은 만만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싫어 부모님에게 가끔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모님 말씀대로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남이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든 꼭 그 저의를 살피고 경계하게 됩니다. 대인관계에서도 자꾸 문제가 생겨 걱정입니다.(서울 순화동에서 회사원)
▼답 ▼
때로 부모의 어떤 성향을 싫어하면서도 자식들이 그대로 닮아가기도 합니다. 정신과에서는 이것을 ‘적대자와의 동일시’라고 합니다. 그런 뜻에서 부모님으로부터 사람과 세상에 대한 불신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정말 가슴아픈 일입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늘 매사를 지나치게 살피고 나쁜 일만 생길 것을 걱정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자신은 늘 옳고순수하고약하다고생각하기도 합니다. 언제나 남을 경계하고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배워야 할 것은 상대방에 대한 수용과 믿음입니다. 그것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자신의 생각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도 질문하신 분의 부모님은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구분하는 흑백논리를 심어준 듯합니다. 과학적인 사고란 언제나 현실과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이란 내게 잘해 줄 때도 있고 섭섭하게 해줄 때도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기초해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유연성있게 대처한다면 대인관계는 지금보다 많이 개선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양창순(서울백제병원 신경정신과전문의)www.mind―op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