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등장인물부터가 그렇다. 윌 스미스는 서부영화의 보안관같고, 변장과 기계다루는 솜씨가 일품인 비밀요원 역의 케빈 클라인은 TV만화첩보물 주인공 가제트 형사를 연상시킨다. 눈요깃감으로 등장하는 셀마 헤이엑은 영락없는 ‘007’의 본드걸이다.
영화의 배경은 남북전쟁 직후인 19세기의 미국 서부. 그러나 궁지에 빠진 흑인 보안관 윌 스미스가 노예문제 얘기를 꺼내며 “누군들 노예를 안부리고 싶겠느냐”며 씩 웃고 지나가듯 시대배경은 이 영화에서 아무 상관없다. 링컨을 닮은 대통령이 나오고 흑인 보안관에다 CIA같은 정부 비밀요원, 아시아계 여비서와 남미 여성까지 뒤죽박죽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진기한 볼거리는 19세기적인 투박한 재료들과 미래의 첨단 기술이 결합된 온갖 무기와 탈 것들. 희한한 장치들이 즐비한 특수 기관차, 증기로 움직이는 거대한 독거미 로보트 ‘타란튤라’ 등은 그 기발한 상상력 덕에 보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자석으로 만들어진 처형도구, 사람의 머리를 영사기처럼 이용하는 장면 등 기괴하지만 웃음을 참지 못하게 만드는 소넨필드 감독 특유의 유머는 이 영화에서도 여전하다. 그러나 댄서로 분장한 윌 스미스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역전시키는 등 몇몇 유치한 대목들때문에 거대한 스펙터클은 우스꽝스러운 한바탕 소극(笑劇)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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