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스트의 ‘행성’모음곡 음반을 내놓은 지휘자 유종(울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의 말. 객원지휘자로 여러번 호흡을 맞춰온 영국 필하모니아 관현악단을 지휘했다.
새 음반에는 그의 말처럼 ‘별에서 본 지구’의 옥빛 푸르름이 엿보인다. 그동안 ‘행성’은 미국 지휘자들의 손끝에서 ‘서부극’이 되기 일쑤였다. 강약과 속도의 대비를 극단적으로 몰아가면서 별들의 황량한 풍경을 표현한 것.
이와 달리 유종은 속도를 느긋하게 잡고, 음색의 조화에 더 초점을 두었다.
작곡가 홀스트가 악기들의 소리를 섞는 법은 화려하면서도 엉뚱했다. 코끼리 같은 튜바와 참새같은 피콜로가 함께 어울리고, 팀파니가 조용히 사그라들면서 트라이앵글이 여운을 남기는 식이다.
유종은 세심하게 음량을 배분하고 음색을 혼합해낸다. 소리가 커지고 작아질 때도 악기 사이의 균형을 갑자기 깨뜨리지 않고 같은 색깔을 유지한다. 급격한 반전이 적어 무색무취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듣다보면 한층 오밀조밀한 음의 풍경이 느껴진다.
필하모니아는 런던의 ‘5대 교향악단’ 중에서도 런던 심포니와 1,2등을 다투는 악단. 런던심포니는 화려한 음색과 거대한 스케일감이 특징이지만 필하모니아의 장기는 지휘자의 손끝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악단의 집중력이다.
정밀한 녹음도 귀를 압도하는 요인이다. 무대 끝에서 들려오는 트라이앵글의 약음까지 실제의 연주를 듣는 듯 깔끔하게 들려오고, ‘해왕성’에서 관현악과 오르간이 총합주로 울려댈 때는 뱃속을 강타하는 깊은 저음이 선뜻하기조차 하다. 악기들 사이의 원근감도 손에 잡힐듯 하다. 02―566―3975(포니캐년) ★★★★(만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