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157」/로빈 쿡
■「자루속의 뼈」/스티븐 킹
■「한니발」/토머스 해리스
공포중독증. 또하나의 현대병은 아닐까?
도시인들은 놀이공원 롤러코스터에 거꾸로 매달려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더 무섭게, 더 짜릿하게’를 요구한다. 휴일 저녁 온 가족이 모여앉아 스타를 공포로 몰아넣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며 폭소를 터뜨리는 가학적 풍경도 일상화 돼 있다.
책읽기에도 공포중독증의 징후는 뚜렷하다. 20세기 전반 대중독서시장의 주력군은 추리와 로맨스소설. 그러나 요즘은 공포소설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99년 여름 책시장에도 이미 적잖은 공포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링’의 작가 스즈키 고지의 단편 공포소설모음집 ‘어두컴컴한 물밑에서’(씨앤씨미디어). 프롤로그 부분에서 저자는 평화로운 해변을 거니는 작중인물의 목소리를 빌려 현대인의 일상에 깃들인 공포를 이렇게 묘사한다.
‘파도치는 사이를 걷다가 유난히 눈길을 끄는 물건을 발견하더라도 마음의 준비없이는 줍지 않는 것이 좋다. …고무장갑인 줄 알고 주워보니 실은 잘라진 손목이라면 그걸 주운 사람은 두 번 다시 바다에 놀러가지 않을 것이다.’
의학스릴러의 대표작가 로빈 쿡이 신작 ‘O―157’(열림원·전2권)에서 던지는 위험메시지는 더 일상적이다. 살인 대장균이 전세계인의 먹을거리가 된 햄버거를 통해 전파되는 것. ‘O―157’을 유포한 것은 다국적 기업과 이윤추구에만 눈이 먼 병원.
오늘의 공포소설은 폐가나 어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할리우드 영화에서조차 드라큘라가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수 젖은 아웃사이더로 그려지는 시대. 흡혈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파괴본능이라고 공포소설은 반면교사의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내면에서 곧잘 악령(惡靈)을 포착해내는 스티븐 킹. 신작 ‘자루속의 뼈’(대산·전2권)에서는 현재와 과거의 살인사건, 살아있는 인간과 원혼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다. 아내의 급작스런 죽음을 겪은 베스트셀러작가 마이크 누난. 아내와 함께 머물렀던 별장을 찾지만 이곳에서 끊임없이 그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혼령들에 시달리는데…. 킹은 신작 속에 미국사회의 인종차별, 결정적인 순간에 등을 돌리고 마는 인간의 나약함,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밤의 여신 닉스의 초대’시리즈로 발간된 ‘달팽이와 장갑’ ‘7월의 유령’ ‘위팅턴의 고양이’ (책세상). 20세기초 영미여성작가들이 쓴 소설 중 불가해한 현상, 유령을 다룬 것만을 묶었다. 사악한 남편에 희생당한 여성이 유령이 돼 복수하는 이야기 등 유령의 존재를 통해 여성의 분노와 고통을 그려내는 것이 특징. 섬뜩하면서도 구슬프다.
올여름 출판계 공포시장의 다크호스로는 7월말 발간될 ‘한니발’(창해)을 빼놓을 수 없다. ‘양들의 침묵’의 작가 토머스 해리스의 신작으로 ‘양들…’의 후속편이다. 미국에서는 초판 130만부가 발매 1주일만에 동났다.
당신은 왜 공포소설을 읽는가? 간접체험으로라도 공포를 느끼지 않으면 일상이 너무 권태로워서? 오히려 공포에 대한 내성을 기르려는 욕망 때문? 느닷없이 백화점이 무너지고 공중전화 부스에서 사소한 시비끝에 칼부림이 벌어지는 이 위험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정은령기자〉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