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산해관에서 중국역사와 사상을…」

  • 입력 1999년 7월 23일 18시 17분


▼「산해관에서 중국역사와 사상을 보다」금장태 지음 효형출판 308쪽 1만2000원 ▼

이 책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 있다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일 것이다. 다들 똑같이 중국을 여행하지만 보고 느끼는 건 천차만별. 이 책은 그 중 깊이 있는 중국기행에 해당한다.

동양철학자인 금장태 서울대교수의 중국 역사 철학 예술기행서. 북부 만저우(滿洲)지역의 창춘(長春)에서 남부의 광저우(廣州)까지, 산둥(山東) 랴오닝(遼寧) 허베이(河北) 저장(浙江) 푸젠(福建) 광둥(廣東)성을 죽 훑었다. 때론 꼼꼼한 잔걸음으로, 때론 거침없는 보폭으로 중국 대륙 특유의 거대한 스케일과 장구한 역사, 그것을 떠받쳐온 철학과 예술의 흔적을 따라간다.

“말 타고 꽃구경하듯(주마간화·走馬看花) 겅중겅중 뛰어다닌 것이었지만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 보고 또 보았다”는 고백처럼 저자의 시선은 무척이나 섬세하다. 기둥 하나, 벽돌의 색깔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중국의 근저에 깔려 있는 역사와 사상의 뿌리를 들춰보았다는 점. 중국의 정치 경제에 치중한 책들이 요즘 주종을 이루고 있어서인지 중국의 심층을 탐색한 저자의 여정은 더욱 값지게 보인다.

저자가 넘나드는 시공의 폭은 광활하다. 가는 곳마다 고금의 역사와 그 배경 사상을 줄줄이 꿰어낸다. 베이다이허(北戴河)해변에선 이 곳을 찾았던 진시황과 조조 마오쩌둥을 떠올린다. 모두 중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독재권력을 만들었으며 유교(儒敎)를 배척하고 법가(法家)사상을 받아들였던 인물들.

이 곳에서 조조는 진시황을, 마오쩌둥은 조조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들의 생각 속으로 들어간 저자는 그들이 복고적 반혁명적이라고 비판했던 유가와 혁명적 통일적이라며 옹호했던 법가가 어떻게 갈등과 조화를 이루며 중국 역사를 이끌어 왔는지를 들여다본다.

중국의 난만(爛漫)한 예술적 분위기에도 흠뻑 취하게 해준다. 사오싱(紹興)에선 권력과 세월의 무상함을 노래했던 당나라의 시인 이백부터 근대화의 길목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루쉰까지를, 항저우(杭州)의 유명한 호수인 시후(西湖)에선 북송시대의 대문장가 소동파의 시를 떠올린다. 저자도 그 분위기에 취한 듯 “봄날 새벽, 나는 이곳을 둥둥 떠다녔다”고 읊조린다.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되는 저자의 해박함. 그 해박함의 넓이와 깊이에 차라리 숨이 가쁠 지경이다. 긴 호흡을 잘 다스린 유장한 문체도 또다른 매력이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경 지식이 없으면 쉽사리 읽힐 책은 아니다. 차근차근 공들여 읽어야 한다. 중국 지도 한 장 펴놓고 중국사 개설서 한 권 정도는 옆에 두고 말이다.〈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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