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사회의 부와 부체제’를 주제로 열리는 한국고대사학회 하계세미나(29,30일 대전 계룡산 동학사 동학산장)에서 노교수는 주제발표자로, 이교수는 토론자로 나선다.
부체제설은 고대사학계에 있어 핵심적이고도 민감한 쟁점. 부체제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따라 고대사의 상당 부분이 뒤바뀔 수 있다.
‘삼국사기’나 각종 신라 비석을 보면 왕의 이름 앞에 사탁부 급량부 등과 같은 6부의 이름이 나온다. 논란은 이 부와 왕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서 나온다.
그럼 부체체설은 무엇인가? 신라 부체제설이란 ‘신라 진흥왕이 등장하기 이전인 530년대까지 왕은 부(部)의 단순한 대표자에 불과했다. 즉 그때까지 신라는 부체제의 연합정권이었고 따라서 신라의 왕권은 강력하지 않았다’는 이론. 이것은 그동안 국내 고대사학계의 주류 이론으로 받아들여져 왔고 그 대표주자가 바로 노교수다.
그러나 이교수는 이를 반박한다.이교수는 ‘삼국사기’의 신라 건국신화를 근거로 삼아 “신라의 시조인 혁거세는 단순히 6촌(이것은 후에 6부가 되었음)의 대표가 아니라 6부를 통합한 사로국(斯盧國)의 군주였다. 국가 전체를 다스리는 엄연한 정치적 지배자였다. 그리고 부는 지방행정구역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부체체론자들은 “삼국사기의 건국신화 기록을 모두 믿을 수 없다”면서 건국신화 중 6촌장이 회의하는 장면은 부대표자 회의라고 말한다.
반면 이교수는 “이 회의 장면은 사로국 형성 이전의 기록일 뿐이다. 부체제론자들이 ‘군주’라는 기록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부체체는 신라의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와 연결돼있다. 고대국가 형성과정을 논의하는 데 꼭 거쳐야할 주제다. 지금까지의 신라사 서술은 이 부체제설에 기초했다.
이번 논쟁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각별하다. 이같은 사안의 중요성 때문인지 주최측인 고대사학회도 이번 세미나에서 17명의 고대사 전공자들이 부체제라는 한 주제를 놓고 이틀동안 활발한 토론을 벌이도록 했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