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등 12명의 관리가 52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1881년 초 일본을 방문했다. 이른바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 신사들이 일본에 놀러 갔었나? 아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을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이라 불러야 한다고 밝힌다. ‘조사’란 벼슬을 하는 관리를 뜻한다.
고종은 이들 12명을 동래암행어사로 임명, 일본을 부국강병으로 이끈 메이지유신의 모든 것을 조사해 보고하라는 밀명을 내렸다. 역사적으로 ‘스승의 나라’였던 조선이 ‘제자의 나라’인 일본을 개혁의 모델로 삼고 일본 따라 배우기에 나선 것이다.
저자는 1876년 개항의 배경에서부터 조사시찰단의 결성, 일본 방문의 내용 및 성과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개혁의 실패과정을 비판적으로 서술했다. 특히 400여 점에 이르는 사진과 해설은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 조사시찰단을 1860년대부터 일본이 서구 국가들에 파견했던 사절단과 비교했다.
그 결과 시찰단의 규모와 계획성, 파견 인물들의 전문성, 보고서의 내용 등에서 일본에 미치지 못했음을 밝히며 이를 개혁 실패와 국권 상실의 주요인으로 지적한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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