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이 어떡하죠?]신뢰와 관심이 자녀가출 막아

  • 입력 1999년 8월 1일 19시 21분


“우리 반에는 마누라를 가진 애가 있어요.”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아들이 이 말을 할 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다. 가출한 아이가 동네 주유소에서 밤에 일하며 또래 소녀와 같이 지내는 모양이었다. 나를 불안하게 한 것은 그 다음 한마디 말이었다. “그런 애가 공부 잘하는 애들보다 훨씬 인간적인 걸요.”

며칠 후 학교에 방문할 일이 생겨 담임교사를 만나 이 일에 관해 물어 보았다. 담임교사는 “병이 옮은 그 애를 병원에 데리고 다녀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아이에 대해 분노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가엾게 여기는 것 같았다. 가출한 아이를 설득해 부모에게 데리고 갔지만 부모가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아이를 때려 이틀도 안돼 아이가 다시 가출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학교에 나와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학교 정문을 나오면서 담임교사의 너그러운 사랑이 아이들이 교도소로 가는 길을 차단했다고 생각했다.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의 다수가 불행한 가정에서 성장했다는 탈옥수 신창원의 말이 떠올랐다.

‘불행한 가정’이라는 말은 언뜻 가난한 가정이나 편친(偏親) 가정을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 결손 가정에서 자란 청소년이 비행을 저지르게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 생각은 공식통계를 보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중류층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청소년들의 비행이 빈곤층 가정이나 편친 가정에서 성장한 청소년의 비행률을 넘어선다. 온전한 가정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의 비행과 일탈 비율이 높아지는 이유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90년대 아이들은 물질적으로 풍부한 환경에서 성장하지만 정작 소외돼 있다. 기는 아이에게 외제 분유나 장난감을 경쟁적으로 사주는 부모들은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는 소홀하다. 오히려 부모들의 성취 과열로 학대를 당한다. 아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부모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면서 보여주는 따뜻한 눈빛과 관심이다.

청소년기에 한 순간이라도 가출을 생각해보지 않는 청소년은 드물 것이다. 부모들의 현실적 기대가 청소년들에게 부담이 된다. 그 무엇보다도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자기 좌절감이다. 또래들과 비교했을 때 느끼는 열등감 때문에 때로 피곤한 학교 경주에서 벗어나고 싶다.

가출의 유혹을 받을 때마다 부모가 자신을 신뢰하고 깊이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은 유혹에 저항하고 지루한 일상(日常)을 버텨낸다. 무더운 여름날 선풍기 하나 없는 교실에서 무거운 책가방 만큼 힘든 하루를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보내는 것은 하루 종일 자신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눈빛 때문이다. 부모의 관심과 애정만이 우리 아이들을 가출의 유혹으로부터 지킬 수 있다.

이순형(서울대 교수·아동가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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