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는 나풀나풀 저쪽으로 뛰어갔다. …나는 바람 속에 온 산 가득 진달래가 눈처럼 날리는 것을 보았다. 어쩌면 내 눈 속에 그 아이가 붉은 꽃처럼 날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온동네를 뒤져 자루에 탄부스러기를 담던 광산촌 아이. 그의 곁을 고요한 눈길로 맴돌던 광업소 부소장집 딸. 그리고 헤어짐.
아이는 작가가 되어 인근 동해시에 들르고, 우연히 첫사랑의 소식을 듣는다. 주저 끝에 찾아간 옛 추억의 마을 정동. 그곳은 정동진이라는생소한이름으로불리며‘서울오랑캐’가바글거리는 낯선 마을이 되어버렸으니….
헌화로(獻花路) 절벽길로 하얗게 부딪혀오는 파도. 남자는 여자에게 “다음엔 절벽 끝의 꽃을 꺾어 바치러 오겠다”고 말하지만, 재회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흑백 프레임 속의 풍경들이 작가의 가만가만한 목소리 속에 아련한 빛으로 물들여지고 무분별한 탐욕에 파괴된 바닷가 마을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읽는 이의 가슴 한구석에 통증을 남긴다.
“어부가 되었거나 대처로 막일을 떠난 광원들…. 그대가 밟고 선 곳이 그들의 삶의 마당이었던 자리가 아닌가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대, 정동진에 가면 말이지요.”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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