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달콤한 시선으로부터/기쁨이 은은하게 밀려왔지/내 마음은 온통 너에게로 가 있었고/숨쉬는 것조차도 너를 위한 것이었지’(만남과 헤어짐)
필부(匹夫)도 사랑할 때는 시인이 된다. 밤새 고쳐쓴 편지였든 남이 볼세라 감춰둔 일기였든, 한때 갈고 다듬었던 사랑의 언어들은 훗날 돌연히 날아와 가슴 한귀퉁이를 싹둑 자르고 달아나기도 한다.
하물며 대문호 괴테에게서야. 그의 일생을 수놓은 여인들은 마르지 않는 창조의 원천이었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 ‘파우스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명대사는 여성을 창조력의 근원으로 본 괴테의 여성상을 함축한다.
‘괴테, 불멸의 사랑’은 괴테의 생애를 거쳐간 6명의 여인상을 통해 대시인의 모습을 조감한 책이다.
21세 첫사랑의 여인 프레데리케. 라인강변의 푸른 들판을 뛰어다니며 연인들은 밀어를 속삭인다. ‘너는 나를 사랑한다/종달새가 노래를 사랑하고 하늘을 사랑하는 것처럼’(오월의 축제)그러나 젊은 괴테는 도시로 나간 뒤 그를 저버리고 만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우리에게 낯익은 샬로테(로테)부프. 소설과 달리 괴테는 자살하지 않았고 명작 단편이 우리에게 남겨졌다. ‘그녀의 결혼반지가 눈에 띄는 거야. 나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어. 그런데 그녀가 꿈처럼 달콤한 옛날의 그 멜로디를 연주하는 거야.’(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약혼까지 했다 양가의 반대로 헤어진 릴리, 바이마르 궁정에서 만난 귀부인 샬로테 폰 슈타인, 30년간 함께 생활을 이어간 부인 크리스티아네…. 괴테 여성 편력의 역정은 73세때 만난 17세의 소녀 울리케에게서 최후의 절정을 이룬다.
울리케의 집안이 괴테의 청혼을 거절하고 이별 연회를 열어준 날, 괴테의 방에서는 밤새 그의 고독한 발소리가 들렸다. ‘신은 나로 하여금 고뇌를 말하도록 했다/꽃이 다 지고 난 지금/다시 만나기를 희망할 수 있을까?’(마리엔바트의 비가)
책 전체는 여인들을 둘러싼 흥미로운 일화와, 그 자취로 남겨진 찬란한 언어의 보석들을 교직(交織)하면서 전개된다. 괴테가 당대의 대문호가 아니었더라면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은 그저 ‘스쳐지나간 존재’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괴테가 남긴 글을 통해 모두 ‘불멸의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환생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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