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과 기술의 차이 때문에 프로야구에서는 불가능한 일. 그러나 ‘프로 샐러리맨’은 전원 홈런왕이 되지 않으면 21세기에는 ‘다치는’ 분위기에서 살 것으로 보인다.
지식을 무기로 끊임 없이 경영혁신을 하며 부(富)를 창출해내는 지식경영시대. 자신의 업무지식과 노하우 뿐만 아니라 남의 지식까지도 자유자재로 활용, 홈런을 쳐내는 ‘지식 노동자’만이 살아남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 김대중대통령도 광복절 기념사를 통해 ‘창조적 지식기반국가 건설’을 주창하지 않았던가.
마이크로소프트 포드 IBM 등 글로벌 스탠더드를 주도하는 미국 기업들은 이미 지식경영을 정착시켰다. 국내 기업들도 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98년 2월 지식경영을 선언한 시스템통합(SI)업체 LG―EDS시스템의 사례를 통해 ‘지식 직장인’의 모습을 엿보면….
▼ ‘쟁이’는 가라
고객의 회사에 파견돼 전산망을 유지 보수하는 일을 맡아온 김모과장(35).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고객사와의 상담기록, 기계의 사양 보수기록 등의 정보를 상당부분 들고 갔다. 후임자 박모과장(34)이 ‘통밥’으로 업무파악을 하지만 한달 가량은 허둥지둥. 일이 터질 때마다 김과장을 찾는다.
3,4년전만 해도 이처럼 ‘나만의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게 미덕이었고 ‘통밥 역시 능력’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김과장같은 ‘쟁이’는 구시대적 인물. 새 지식 창출과 노하우 공개에 인색한 직원은 연봉삭감도 각오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 노웨어(Know―Where)지식경영
선언과 함께 회사내에 지식경영센터(KMC)가 설치된 뒤. 한 대학의 정보화작업을 끝낸 김모부장(38)은 일을 하면서 얻게된 학사 교무 재무 전산화 관련 정보를 KMC에 제출한다. 대학관계자들에 대한 신상정보와 성향, 문제가 생겼을 때 그들과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등에 대한 ‘노하우’도 함께 제출.
KMC에서는 이 자료를 분류, 누구나 온라인으로 검색할 수 있게 전산화했다.덕분에 처음 일을 맡은 사람도 전산망에서 대학 제조업체 금융기관 등 각 분야의 특성과 노하우를 찾으면 곧 숙련자로 변신 가능하게 됐다.
▼ 당근 있어요
지식 정보를 공개한 사람에게는 당근이 따른다. 총무팀 이희덕대리(34)는 중고컴퓨터 수출, 사무집기의 임대사용 등 매년 120여건의 아이디어를 낸 댓가로 상품권 170만원어치와 보너스 200%, 연봉 10% 인상, 전자수첩을 받았다. 그러나 모든 직원들이 처음부터 이대리처럼 활발하게 아이디어와 노하우를 내놓은 것은 아니었다.
▼ 학습조직
지식공개 붐이 일어난 것은 IMF의 ‘덕’. 회사측은 지난해 상반기 합작회사인 미국EDS에 인력을 파견하는 형식으로 국내 직원수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하기로 했다.
단말기에서 이름만 치면 그 사람이 지금까지 공개한 노하우와 기술, 경력 등이 컴퓨터 화면에 떴다. 미국 파견은 임금인상과 주택제공이보장되는좋은자리. 직원들 사이에자신의존재를부각시키기 위한경쟁이벌어졌고덩달아 지식공개량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후 회사는 ①직원들이 창출한 지식을 ②KMC가 받아 분류 저장하고 ③직원들은 KMC에서 지식을 받아 활용하는 한편 다시 지식을 창출, 또 ①∼③이 반복되는 ‘지식노동자 조직’으로 변화했다.
▼ 이제 연줄은 통하지 않는다
회사직원은 4000명. 그러나 내 지식과 노하우를 주고 4000명이 제공한 지식을 받는 LG―EDS의 지식노동자 수는 ‘4000×4000명’. 1600만명+α도 가능.
‘두뇌 수’의 증가와 함께 가장 먼저 변한 것은 조직내의 ‘줄’이다. 학연 지연을 통해 유통되던 주요 정보가 누구나 접근 가능한 KMC로 집중되면서 ‘연줄’은 사라졌다. 대신 지식의 활용도에 따라 지식정보 많은 사람에게 자연스레 줄이 세워지는 ‘지식줄’이 생겼다.
최고지식경영자(CKO)인 오해진부사장은 “‘생각의 속도’로 지식이 오가는 조직에서는 지식의 양과 질에 따라 지위 소득의 고하가 결정된다”고 강조. 그러나 아직은 완전하지 않다. 오 부사장은 “유교적 가치가 지배해온 우리사회의 특성을 고려,당분간은선후배동기간의 실력차를줄이기위해재교육을 강화하는등의‘한국형지식경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성엽기자〉news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