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超고대사 복원'불과
김지하 선배는 1만4000년 전 중앙아시아의 낙원이라는 ‘마고(麻姑)’의 시대부터 단군조선의 ‘신시(神市)’까지 이어지는 인간 내면의 순환질서 ‘율려(律呂)’의 회복을 주장하며 동이(東夷)문화의 시원을 찾아 되살리겠다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운동은 현재 철학적 ‘민족정신 회복운동’과 역사학적 ‘상고사 바로 세우기 운동’으로 크게 나뉘는데 이 글에서는 후자를 주로 거론하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결코 우리 ‘상고사 바로 세우기’운동이 아니다. 동양의 ‘초(超)고대사 복원’ 운동이다. 플라톤이 대서양에 가라앉아 버린 ‘아틀란티스 문명’을 말한 이래 신화 수준의 한 두 조각 사료를 근거로 인류의 잃어버린 문명을 찾아내려 하는 일부의 초고대사 복원운동과 같은 성격이다.
‘초고대사’란 문헌을 사용하기 전부터 전래돼 온 근원적 역사, 즉 ‘집단적 서원(誓願)’의 역사를 상상력과 직관 및 고고학 언어학 등의 성과를 사용해 밝혀내려는 학문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 검증안된 문헌 인용
하지만 역사학은 문자―사료를 바탕으로 하므로, 그 뿌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제나 ‘실증’이었다. 특히 김 선배처럼 오늘날 합리적 과학으로 ‘실증’이 불가능하거나 검증을 거치지 않은 ‘부도지(符都誌)’같은 문헌을 사료로 사용한다면 역사학으로 대접받을 수 없다.
김 선배는 21세기 직전 우리 역사과학 주류의 ‘실증’수준이 낡은 20세기 전반 ‘이병도 식민사학’ 정도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심각한 오류이자 모독이다. 지금 역사학계의 ‘침묵하는’ 주류는 식민사학과 그 부산물인 개발독재를 극복하려는 학문투쟁으로 형성됐다. 곧 김 선배가 수많은 학문적 사상적 실험과 횡단을 통해 현재에 도달했듯이 역사학계도 치열한 학문적 사상적 실험과 횡단을 마다하지 않음으로써 ‘실증’과 ‘보편성’ 수준을 재창조해 왔다. 이를 잘 아는 분들이 김 선배 주위에도 있을 것이다. 김 선배도 그 정도의 안목은 갖추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물론 역사가 중 ‘사상’ 등을 매개로 초고대문명사가로 전업한 분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런 성과를 역사과학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어쩌면 역사교과서에 ‘아틀란티스 문명’과 같이 인류가 잃어버렸다는 문명들이 수록될 만큼 현재의 ‘초고대사’가 과학적 실증과 보편성을 확보할 시절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 역사학 멋대로 재단
하지만 초고대사 단계에서 실험과학 수준의 현대 역사학을 멋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 ‘통합적 과학’을 표방하면서도 자신과 학설이 다르다 하여 ‘상고사 교육을 즉각 중지하라’거나 ‘역사 광복’을 외치며 언론과 권력의 힘을 빌어 캠페인을 벌리는 것은 더욱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과거 일제 황국사관주의자들이 ‘만년 한 계통(萬歲一系)’이니 ‘카미카제(神風)’니 하면서 벌였던 초역사적 정신동원운동의 방식과 별로 다를 것 같지 않다. 이런 체질을 넘어서는 현대 학문운동 방식을 써야 할 때다.
박광용(가톨릭대 교수·국사학)